10대 흑인소년 사살 플로리다주 자율방범대원 무죄 평결… ‘흑백 인종갈등’ 비화·오바마 대통령까지 공론화 ‘제2 흑인 폭동’ 조짐까지
조지 지머먼“그는 나에게 다짜고짜 대들었고
나는 정당방위를 위해 총을 쐈다”
지난해 2월 플로리다주의 소도시에서 히스패닉계 자율방범대원이 무고한 10대 흑인 소년을 사살한 사건에 대해 지난 13일 배심원 평결에서 자율방범대원에게 무죄 평결이 내려지자 미 전역에서 이에 항의하는 집회와 시위가 잇따르며 흑백 간 인종갈등 문제로까지 비화하고 있다. 평결 1주일 후인 지난 20일에는 미국 전역 100개 도시에서 집회가 개최되고 미국 유명 인사들은 물론 오바마 대통령까지 나서 이 문제를 공론화하는 등 사건의 파장이 만만찮다. 이 사건이 제대로 처리 되지 않을 경우 미국 내 제2 흑인폭동 조짐마저 예상된다. 당장 이번 사건을 계기로 플로리다주 등 미 31개 주에서 시행 중인 정당방위법 폐지론마저 나온다. 백인 5명, 히스패닉계 1명으로 구성된 미국 배심원단은 히스패닉계 자율방범대원 조지 지머먼에게 무죄를 평결했다. 당신이 배심원이라면 어떻게 판결할 것인가.
“왜 따라오냐고 물었을 뿐인데...
나를 거칠게 다루고 총까지 쐈다”
▶마틴 트레이번의 이야기=나는 마틴 트레이번.
미국 플로리다주에 사는 흑인 고등학생으로 나이는 만 17세다.
플로리다주 하면 미국 최남단에 위치, 관광도시로 유명한 마이애미를 떠올릴 것이다. 연중 따뜻한 기후와 아름다운 해변에 반해 전 세계에서 휴양객들이 몰려오는 도시.
퀴즈 하나. 플로리다주 주도는 어디일까? 플로리다 반도 돌출 시작부와 미 대륙의 연결점에 있는 탤러해시인데, 의외로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사는 도시는 탤러해시와 마이애미의 중간 지역, 즉 플로리다주의 중앙 지역에 위치한 샌퍼드라는 곳. 면적 58.53㎢, 인구 5만4000여명에 불과한 작은 도시다.
나도, 당신도, 아니 누구도 몰랐을 것이다. 이 작은 도시가 갑자기 어느 날 세상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될 줄은….
이 도시가 사람들 입에 거론되기 시작한 건 공교롭게도 나의 죽음 때문이다.
그렇다. 내가 지금부터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나의 죽음에 관한 것이다.
한국에서는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린다’고 했던가. 사실 나는 그 표현을 ‘마틴이 한을 품으면…’ 이라고 바꿔보고 싶을 정도로 절박한 심정이다.
내가 사망한 사건은 나의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당신의 이야기이다. 총기 소지가 합법화된 미국에서, 특히나 정당방위법이 채택된 플로리다에서 사는 모든 주민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다.
다 지난 일이지만, 나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자니 감정이 북받쳐 오른다.
자 여기서 잠깐. 호흡을 가다듬고.
그때가 그러니까, 2012년 2월 26일 저녁이었다.
나는 샌퍼드시 교외에서 부모님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스키틀’ 사탕과 ‘애리조나 아이스티’를 샀다. 내 호주머니 사정을 감안하면 꽤 괜찮은 간식이다. 계산하고 편의점을 나서는데 비가 내렸다. 사탕과 아이스티를 한 손에 든 나는 입고 있던 회색 후드티의 모자를 뒤집어쓰고 걸었다. 역시 갑자기 비올 때는 후드티가 최고다. 젖긴 하겠지만 우산이 없는 상황에서 비 피해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다.
그런데 비 내리는 어두운 밤길, 왠지 을씨년스럽긴 했다. 인기척이 나면 왠지 겁이 날 것만 같았다. 상대방은 내가 무섭게 보일 것이다.
어두운 밤 예쁜 소녀가 길을 걷다가 나 같은 차림의 소년을 만난다면 혹시나 무슨 사고를 당하지나 않을까 두려워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쁜 소녀여, 걱정말라. 나는 그냥 피부가 까맣고 후드티를 입었을 뿐 당신과 마찬가지로 꿈 많고 겁도 많은 10대 소년일 뿐이다.
난 당시에 약물이나 음주를 한 상태가 아니었다. 범죄 전력도 전혀 없었다. 학교에선 모범생 소리를 듣는다. 흉기도 물론 소지하지 않았다.
그때쯤이었다. 누군가가 이 쪽을 향해 다가오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여자친구에게 “이상한 사람이 내 뒤를 쫓고 있다”고 말한 뒤 지머먼에게 “왜 나를 따라오느냐”고 물었다.
이 사람은 지역 민간 자율방범대원이었다. 나를 붙잡은 그는 나를 상당히 거칠게 다뤘다. 언쟁 끝에 격투가 벌어졌다. 가만히 있다가는 맞아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사력을 다해 저항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총을 꺼내들더니 나를 향해 쐈다. 세상에 이럴 수가!
그때부터 1년6개월이 흘렀다.
나를 쏜 자율방범대원 조지 지머먼(29)은 사건 후 44일간 체포조차 되지 않았다. 우리 부모님, 흑인사회와 인권단체들의 주도로 시작된 항의집회가 샌퍼드에서 마이애미, 뉴욕 등 미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오바마 대통령이 진상 조사를 촉구하는 등 파문이 확산되자 플로리다주 검찰은 지난 4월 지머먼을 2급 살인죄로 기소했다.
2급 살인이란 고의성은 없지만 격투 등이 살인의 원인이 됐을 때 적용하는 죄목이다.
사건 발생 후 1년5개월여 후인 지난 13일 플로리다주 법정에서 배심원단은 지머먼에 대해 무죄 평결을 내렸다.
지머먼은 내가 먼저 자신의 얼굴을 때리고 바닥에 넘어뜨린 뒤 몇 차례 머리 등을 가격해 생명의 위협을 느껴 정당방위로 총을 발사했다며 위기를 모면했다. 덩치가 훨씬 큰 데다가 총까지 가진 그를 내가 어떻게 넘어뜨리고 가격할 수 있었을까.
더구나 배심원단 6명 전원이 여성이며 백인 5명, 히스패닉계 1명인 것으로 알려지자 미국 내 전역에서 항의 집회가 열리면서 흑백 간 인종갈등으로까지 비화하고 있다.
지난 19일에는 이 사건에 대해 오바마 대통령까지 나서 “마틴은 35년 전의 나였을 수도 있다”고 말하며 미국의 정당방위법 재검토를 촉구했고 20일에는 미국 전역 100여개 도시에서 무죄 평결에 항의하는 시위가 열렸다.
사건에 연루된 당사자인 나는 이 사건으로 결코 유명해지고 싶은 생각이 없다. 지금 내가 걱정하는 건 아무런 혐의 없는 소년이 당장 오늘이라도 똑같은 일을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내 희생이 헛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는 나에게 다짜고짜 대들었고
나는 정당방위를 위해 총을 쐈다”
▶조지 지머먼의 이야기=나는 조지 지머먼.
미국 플로리다주 샌퍼드시의 자율방범대원이다. 인종은 히스패닉계 백인으로 나이는 만 29세.
나는 어려서부터 사회 정의를 바로잡는 경찰이 되고 싶었다.
비록 지금은 민간 자율방범대원으로 일하고 있지만 지역 범죄 해결에 큰 공을 세워서 나중에는 꼭 진짜 경찰이 되고 싶다.
나는 지난 2012년 2월 26일에도 지역사회 시민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불철주야 방범 활동에 주력하고 있었다.
그날은 비가 내렸다. 왠지 기분 나쁜 밤이었다. 순찰을 다니는 도중에 샌퍼드 시 교외에서 수상한 흑인 소년을 발견했다. 그는 후드티를 덮어쓴 채 휴대폰으로 전화 통화를 하며 혼자 걷고 있었다. 수상해 보였다. 이렇게 으슥한 곳에서 혼자 무엇을 하고 있을까.
곧 무전으로 911에 ‘수상한 녀석이 보인다’고 보고하고 뒤를 쫓았다. 911에서는 ‘쫓아갈 필요가 없다’는 회신이 왔지만, 사실 누가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지는 현장 수사관이 판단할 일이다.
나는 특유의 직업 정신을 발휘해 그 녀석을 끝까지 쫓아갔다. 만약 아무 잘못 없는 녀석이라면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
가까이 다가갔더니 이 녀석이 “왜 나를 따라오느냐”고 삐딱하게 대들길래 황급히 이 녀석을 제압하고 몸 수색을 실시해봤다. 이런 녀석들은 흔히 몸에 마약을 숨겨가지고 다니며 몰래 사고파는 불법 행위를 저지르고 있을 것이다. 없다면 다행이지만 있다면 내가 제대로 본 것일 테다.
그런데 갑자기 이 소년의 태도가 돌변하더니 나를 향해 다짜고짜 덤벼들었다. 그를 제압했다고 생각하며 잠시 방심했던 나는 그에게 수차례 얻어맞았다. 이 녀석의 몸 수색도 다 하지 못 했는데 몸속에 흉기를 감추고 있을 수도 있다. 자율방범대원 생활 중에 나에게 최대 위기가 닥쳐온 것이다.
더군다나 이 소년은 경찰은 아니지만 명색이 지역 자율방범대원인 나에게 호기롭게 덤벼들고 있다. 이 녀석 봐라!
가까스로 그가 내뻗은 주먹에서 벗어난 나는 자세를 가다듬고 평소 소중히 여겨온 권총을 꺼내들었다.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조금이라도 지체한다면 갱단의 일원일 수도 있는 그에게 당하고 말 것이다.
나는 정당방위 차원에서 그에게 총기를 발사했다. 쓰러진 그의 몸 수색을 실시한 뒤 나는 아연실색했다. 예상과 달리 그는 마약이나 흉기를 지니지 않고 있었고 그의 소지품으로는 ‘스키틀’ 사탕과 ‘애리조나 아이스티’밖에 없었다.
물론 그에게는 애석한 일이지만 이런 경우는 전국의 수많은 자율방범대원들이 겪는 사고다.
이런 사고를 통해 희생되는 자율방범대원도 상당수에 달한다. 상대가 범죄자냐 아니냐를 미리 알 수는 없는 일이다. 이렇게 우리는 범죄 근절의 최일선에서 목숨을 걸고 일하는 사람들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정당방위 차원에서 총을 쐈다. 애석하게도 무고한 그가 죽었지만 나는 무죄다.
김수한 기자 /sooha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