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강승연 기자] 최근 부실은행 문제가 심각해진 유럽의 기업들이 자본 조달을 위해 채권시장 문을 두드리고 있다.
은행대출을 선호하던 유럽의 자본 조달 방식이 채권 중심의 미국식으로 바뀌고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올해 유럽 기업들의 은행대출 규모가 지난 10년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아시아판 파이낸셜타임스(FT)가 23일 전했다.
신용평가사 피치가 유럽 기업 201개사의 지난 5년간 대차대조표를 분석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올 상반기 유럽 기업의 신규 차입자본금 총 4950억 유로(약 729조2934억원) 중 은행 대출금은 2380억 유로(약 350조6502억원)인 것으로 드러났다. 절반도 채 되지 않는다. 금융권 대출이 이렇게 낮게 기록된 것은 사상 처음으로, 지난해보다 60%나 떨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피치는 이런 상황이 지속될 경우 올해 은행의 기업대출금이 5000억 유로(약 736조6600억원)를 밑돌 것이라고 전망했다. 은행 차입금이 1조2000억 유로(약 1768조원)에 달했던 지난 2007년에 비해 가까스로 3분의 1을 웃도는 수준이다.
반면 채권시장 규모는 급증했다. 보고서는 기업의 회사채 발행 증가로 인해 올해 유럽 기업의 평균 부채구조가 2008년 62%에서 82%로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지난 2008년 금융위기를 계기로 한층 강화된 은행 규제조치가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하고 있다. 국제결제은행(BIS)이 대형 은행들의 재정건정성을 강화하기 위해 내놓은 ‘바젤Ⅲ’ 등의 조치로 인해 대출금리가 뛰어오르면서 신규 기업대출을 억제하는 효과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또 채권 발행 비용이 낮아진 점도 한몫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지난해 유로존 위기 해소를 위해 금리 인하를 단행하자 회사채 발행 기업들의 부담이 줄어든 것이다. 그 결과 투자적격등급을 받은 유럽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 비용은 작년 여름 2.8%에서 6월 1.8%로 줄었다. 최근 3주간 발행 비용이 다시 2.2% 올랐지만 지난해보다 회사채 발행 부담은 여전히 낮다.
이에 따라 유럽 기업들의 자본 조달 방식이 채권의존도가 높은 미국식 시장모델과 유사하게 바뀌고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미국 기업의 경우 전체 차입자금의 3분의 2 정도를 채권시장에서 빌려와 충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유럽 기업은 자금의 3분의 1가량만 회사채 발행으로 조달해왔다. 하지만 은행대출 환경이 나빠지면서 유럽의 채권시장은 더욱 뜨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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