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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디 ‘날선 그림’그리는 화가 없소? 젊은 페인터 3인의 작업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 요즘 젊은 미술가들 중에는 회화 작업을 ‘구시대 유산’으로 여기는 이들이 많다. 특히 유화 작업을 바라보는 시선은 더욱 그렇다.

“아직도 고구려시대 산물인 페인팅을 하는 작가가 있다고요?”라고 되묻는 작가들도 적지않다. 시대착오적인 작업에 매달리는 작가들이 이해가 안간다는 식이다. 그러나 회화는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아니 더 깊이, 더 독특하게 파고들어야 할 게 회화다. 동시대와 함께 호흡하며 시대를, 인간을, 그리고 꿈과 무의식의 세계를 그려야 하는 것이다.

여기 세명의 젊은 페인터가 합동전을 연다. 서울 서초동의 갤러리바톤(대표 전용진)은 지난 16일 ‘What The Baton Saw’라는 타이틀로 젊은 페인터들의 그룹전을 개막했다.

오는 8월 17일까지 계속될 전시에는 김영일, 오택관, 우병진 세 작가가 초대됐다. 모두 삼십대 초중반의 신예들이다. 이들의 회화 총 10점이 내걸린 이번 전시는 과거와 달리 장르구분이 모호하고 무의미해져 그로인해 더 자유로울 수, 또 막막할 수 도 있는 상황에서 자신이 연마한 테크닉을 기반으로 나름대로의 미적 세계를 치열하게 추구하는 화가들의 작업을 조명해보자는 취지에서 기획됐다.

김영일 Forgetting City Life 27, 2012, Oil on canvas, 130x194cm [사진제공=갤러리바톤]

김영일(34)은 ‘망각’시리즈를 출품했다. 도시라는 인공적 환경에서 살아가는데 길들여진 나머지 이를 ‘자연’보다 더 상위로 인식하는 현대인의 생활양식을 주관적으로 관찰해 이를 표현한 작업들이다. 김영일의 화면마다 등장하는 마네킹은 인공적 환경 속에서 끊임없이 소비의 욕망에 노출된채 미디어와 거대 기업들의 의도에 무의식적으로 끌려가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은유한다. 현란하기 이를데 없는 현대도시라는 무대에서, 시각적 또는 외형적 이미지가 인간의 가치를 그대로 결정해버리는 시스템과, 쇼윈도의 미적 화려함 속 숨겨진 함의에 주목한 작업인 것이다.

오택관(33)의 추상 회화는 기하학적인 면과 선, 평면성이 강조된 분할된 화면으로 이뤄져 있다. 정통적 회화방식과 드립핑, 테이핑 방식을 혼용해 작업하는 작가는 특정한 사전계획에 매달리기 보다는 이미 구현된 기학학적 이미지를 좌표로 삼아 뒤따르는 이미지에 형태와 DNA를 부여한다. 하나의 이미지가 다른 이미지를 잉태하고, 그런 이미지 패턴의 합(合)이 최종적으로 ‘통제된 즉흥성’을 구현하도록 하는 것이다.

우병진(31)은 자신이 살아오면서 경험한 ‘타자와의 관계’한 회화를 선보이고 있다. 그의 작품은 독립적 존재들이 사회적 또는 생태계적 관계 속에서 새로운 의미와 기능을 부여받고, 새롭게 부여받은 형식이 본질의 권위와 존재가치를 역으로 규정하는 일련의 시스템에 대한 내밀한 비망록이다. 

우병진 Red space, 2011, Oil on canvas, 145x145cm. [사진제공=갤러리바톤]

2011년작인 ‘Red Space’는 화면 여기저기 널부러져있는 돼지들을 붉은빛으로 표현한 회화다. 그림 속 돼지들은 모두 눈이 없다. 이로써 각 개체의 존재는 지워져버리는 동시에, 돼지라는 존재가 오로지 인간의 부양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음을 은유하고 있다. 화면 전체에 흐르는 붉은색은 이들 돼지들이 도축 후 자리잡게 될 정육점의 붉은 조명을 암시하고 있다. 02)597-5701

yrlee@heraldcorp.com

오택관 The Pink Book 2013, Acrylic on canvas, 180x180cm [사진제공=갤러리바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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