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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 - 강주남> 되살아나는 엉클 샘의 망령
꽃다운 중국인 소녀 3명의 생명을 앗아간 아시아나기 사고 슬픔 속에서도 미국 언론은 편파적이고 인종차별적인 보도를 일삼아 지구촌의 공분을 사고 있다.



최근 미국 샌프란시스코 아시아나항공 사고 수습 과정에서 불거진 일부 현지 언론과 네티즌들의 인종차별적 언행을 보면서 5년 전 미국 연수 시절이 떠올랐다.

우리 가족이 머문 곳은 미국 중남부의 작은 시골 마을이었다. 유학비자를 받은 덕에 당시 12살, 11살 아이들을 공립학교(Elimentary school)에 편입시킬 수 있었다. 애들을 등교시킨 지 며칠이 지나지 않은 어느날,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댁의 아이가 잘못을 저지르고도 반성은커녕 오히려 대든다”는 것이었다. 부모가 빨리 오지 않으면 ‘경찰을 부르겠다(Call the Police )’고 협박(?)까지 했다. 헐레벌떡 달려가 아이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그러자 아이는 “백인 아이 셋과 복도에서 실랑이가 붙었는데, 선생님이 나만 벌을 세운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먼저 시비를 건 쪽은 미국 애들인데, 선생님이 일방적으로 자기만 나무란다는 것이다. 이 사건 이후 아이는 ‘요주의 인물’로 찍혔고, 우리 부부는 1년간 뻔질나게 교무실을 드나들어야 했다.

이방인으로 당해야 했던 설움은 동네 퍼블릭 골프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백인 매니저는 카트를 타고 다니며 몇 달 동안이나 우리 가족을 감시했다. 자기 놀이터를 동양인이 헤집고 다니는 게 영 달갑지 않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이 매니저는 주말에 홀이 밀리면 미국 골퍼들에게는 비어 있는 옆 홀로 안내해주는 친절함을 베풀곤 했다. 그러나 우리가 홀을 패스할라치면, 어디선가 불쑥 나타나선 ‘규정에 어긋난다’며 어깃장을 놨다. 만 12세 미만은 카트 운전을 할 수 없다고 제동을 거는 통에 큰 아이와 골프장 규정집을 펴놓고 한바탕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우리 가족이 ‘축복받은 땅’ 미국에서 1년간 살면서 가장 많이 떠올린 단어는 불행히도 ‘Discrimination(인종 차별)’이었다. 그때 당한 차별이 얼마나 서러웠던지 한국에 돌아온 직후 양용은 선수가 미국의 자존심 타이거 우즈를 꺾고 PGA 챔피업십에서 우승하는 장면을 보면서 가슴이 뻥 뚫리는 쾌감을 느꼈다.

가족사를 일반화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아이로니컬하게도 세계 민주주의 수호자임을 자처하는 미국에서 인종차별 논란은 끊이지 않는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현지 외신에 따르면 100년 전통의 노스캐롤라이나주 소재 한 골프장은 이달 초 첫 흑인 회원을 받아들였다. 만연한 인종차별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최근 흑인소년을 총으로 쏴 죽인 히스패닉계 백인 ‘조지 점머먼’이 무죄 판결을 받고 물려난 사건은 흑인폭동 사태로 번질 조짐이다.

꽃다운 중국인 소녀 3명의 생명을 앗아간 아시아나기 사고 슬픔 속에서도 미국 언론은 편파적이고 인종차별적인 보도를 일삼아 지구촌의 공분을 사고 있다. 특히 일부 미국 네티즌은 아시아인의 운전실력을 조롱한 글을 올려 우리 교민사회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미국인들이 백인 우월주의에 빠져 유색인종 비하 행위를 일삼는 한, 전 세계인에게 각인된 ‘표독한 엉클 샘(Uncle Sam)’의 이미지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주홍글씨로 남을 것이다.

namk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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