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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대 품바 김뢰하, 3년만에 선 연극무대 “낮은 자의 목소리 들어봐라”
“500원만” 꽃거지가 아니다. 솔기도 없이 다 헤진 소매단에 벙거지는 뚜껑도 없어 쓰나마나. 상거지다. 이 상거지는 관객에게 담배 한가치 달라고 구걸하고, ‘니미럴, XX새끼’ 상욕도 서슴치 않는다. 잠언, 금언도 할 줄 안다. “앞에 사는 인생은 받고, 배우고, 생각하는 인생이라면 뒤에 남은 인생은 주고, 가르치고, 행동하는 인생”이라며 중년 관객들에게 일침을 놓는가 하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은 베푸는 일”이라며 베풀며 살라고 주문한다.

1981년 초연 이후 32년째인 ‘품바’가 다시 올려졌다. 다음달 말까지 대학로 상상아트홀 전용관에서 공연하는 ‘품바 오리지널’은 초연의 형식을 따라 배우 1인의 모노로그와 고수 1명의 추임새로만 이뤄진다. 100석 규모의 소극장에서 관객의 호기심 가득한 시선이 무대 한가운데 쏠린 가운데, 배우는 첫 등장부터 강렬하다. 품바는 ‘반민특위해체’ 기사가 난 신문을 읽더니, 그 신문을 바닥에 깔고 뒤돌아 앉아선 엉덩이를 까 내리고 큰 일을 보는 시늉을 한다.


22대 품바로 이 공연에 합류한 김뢰하(48)는 10일 첫공연 뒤 전화통화에서 “출발이 나쁘지 않다. 개인적으로 만족스럽다”고 흡족해 했다.

‘품바’는 일제 강점기 때 실제 각설이패 대장인 천장근의 일대기를 다룬 내용으로, 광복 이후 한국의 정치 사회 격변기를 훑는다. ‘품바’역의 배우는 일본순사와 부하, 아버지, 선배 등 15명 넘는 역할을 동시에 소화한다. 1인이 한시간 반 가량을 이끌어가야하는 터라 체력 소모는 물론 대단한 집중력을 필요로 해 쉽지 않은 작품이다.

김뢰하는 “극과 극을 연기하는게 가장 어렵다. 깡총깡총 뛰 놀다가, 부모 죽고 애기 죽은 얘기할 때는 나락으로 떨어져서 슬퍼하기도 하고, 이 걸 혼자 다 해야하는 게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또 “극 안에 그동안의 정치 사회 변화를 담고, 배우들이 달라져서 공연을 다르게 느낄 것이다. 관객이 다양한 생각을 갖고 다양하게 봐줬으면 한다”고 했다.

TV드라마 ‘전우치’ ‘빛과 그림자’ ‘공주의 남자’, 영화 ‘푸른소금’ ‘음란서생’ 등에서 맛깔나는 조연을 연기 해 온 김뢰하는 연극 무대가 고향이다. 2003년 연극 ‘날 보러 와요’로 데뷔해 2010년 ‘이(爾)’에서 연산군을 연기했다. ‘품바-오리지널’로 3년만에 다시 선 무대에선 왕에서 거지로 신분이 한참 강등된 셈. 김뢰하는 지난해 이 작품의 제작자, 배우, 연출가와의 술자리에서 출연을 결정했다. 14대 품바를 연기한 선욱현이 연출하고, 김뢰하 외에 장용철, 김왕근, 박호산 등이 품바로 출연한다. (02)747-7491.

한지숙 기자/js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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