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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쭉 찢어진 눈,꼭 다문 입의 이 소녀는 누구? 이소연의 인물화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 커다란 금속뱃지가 유난히 강조된 이 검은 모자는 도대체 어느나라 군대(경찰)의 모자일까? 그런데 검은 모자를 쓴 소녀는 뜻밖에도 하늘하늘한 시폰 원피스를 입고 있다. 어디 파티에라도 갈 차림이다. 블랙으로 색을 통일하긴 했지만 도무지 조합이 안되는, 기이하고 낯선 설정이다. 끝없이 궁금증을 유발하게 하는 알쏭달쏭한 인물화이다.

다른 그림을 보자. 비슷하지만 조금 둥글고 금빛이 나는 뱃지가 달린 검은 모자를 쓴 소녀는 몸에 착 달라붙는 티셔츠를 입고 있다. 역시 길게 찢어진 눈과 뾰족한 턱선, 굳게 다문 입이 무표정 그 자체다.

이 그림은 프러시아를 비롯한 각국의 군모를 쓰고, 또 다른 존재로 자신을 그림 속에 등장시킨 화가 이소연(42)의 신작 ‘모자(Cap)’ 시리즈다. 작가는 군모라는 독특한 시각적 장치와, 그와 동떨어지는 의상을 대비시켜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반영한 인물화를 완성했다. 그간의 인물화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독특한 연작인 셈이다.


수원대와 독일 뮌스터 쿤스트아카데미를 졸업한 이소연은 한국과 독일을 오가며 일곱 번의 개인전과 다수의 기획전을 가져왔다. 그가 ‘자브라이예의 언덕에서’라는 타이틀로 경기도 과천에 소재한 코오롱그룹의 문화예술공간 스페이스K에서 개인전을 갖고 있다. 오는 20일까지 이어지는 전시에 작가는 신작을 포함해 20여점의 회화를 공개했다.

이번 전시에 작가는 ‘모자’ 시리즈 외에, 동남아시아의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를 여행하며 접한 대자연 풍경 속 인물을 그린 신작도 함께 선보이고 있다.

이소연은 자신이 직접 경험한 장소를 작품의 배경으로 배치한 뒤, 자아를 특징짓는 경험이나 심리를 구체적인 오브제와 의상으로 환기시킨다. 신작에서는 흰 거위, 홍금강앵무 등의 새가 등장했다. 어쩌면 서로 무관할지 모르는 장소와 사물이 작가의 경험과 감성을 매개로 한 화면에서 유기적으로 만나고 있는 것. 이로써 예기치 못한 심상의 교차점이 생기는데 작가는 바로 이 대목에 방점을 찍고 있다.

스페이스K의 황인성 큐레이터는 “이소연 스스로의 삶의 궤적을 보여주는 이번 자화상들은 현실 저 너머에 존재할지 모를 동경의 대상을 찾고자 ‘자브라이예의 언덕’에서 스스로를 내려다 본 내면의 풍경화”라며 “‘지금과 여기’가 아닌, 다른 시간과 공간을 향한 그의 그리움은 특유의 상상력과 연극적인 연출에 변화를 거듭하면서 새로운 자신과의 조우를 끝없이 이어가고 있다”고 평했다.

02-3677-3119.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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