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찐 고양이’로 불리며 궁지에 몰렸던 미국 월가가 미국ㆍ유럽연합(EU) 간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계기로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금융규제 강화 움직임에 대한 반격에 나섰다.
영국의 경제신문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오바마 행정부가 FTA 협상에 금융서비스 규제를 포함하라는 유럽 측의 요구를 저항한 이후 월가와 한판 싸움을 벌이고 있다고 8일 보도했다.
월가는 미국이 유럽연합(EU)과의 FTA 협상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규제 관련 논의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강력한 금융서비스 분야 규제를 위해 지난 2010년 제정된 도드 프랭크법과 관련해 유럽과의 규제 수렴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유럽과의 FTA 협상을 앞두고, 월가를 비롯한 미국 금융권의 표면적인 요구는 유럽과의 원만한 FTA를 위해서는 오바마 행정부가 입안한 금융권 규제 관련 법안을 논의하라는 것이지만 FTA를 빌미로 미 정부 당국의 강력한 금융권 규제를 완화하라는 요구가 내재돼 있다.
특히 미국 금융권은 FTA를 계기로 규제를 지금보다 완화하기를 바라는 눈치다. 여기에 유럽 재무장관들마저 미국의 금융시장 규제를 우려하자 월가의 주장은 더욱 힘을 받고 있다.
반면 오바마 행정부는 도드프랭크법을 골자로 하는 은행 규제 법안을 FTA 협상에 포함시키는 것은 유럽이 미국의 금융개혁을 지연시키는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동안 오바마는 월가를 두고 ‘살찐 고양이’ ‘탐욕의 근원’이라고 비판해왔다. 월가의 탐욕을 경계하고 금융권을 개혁하기 위해 탐욕자본주의 규제안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는 오바마 행정부로서는 FTA를 빌미로 이를 양보할 수는 없는 입장이다.
도드 프랭크법은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촉발된 금융위기 이후, 사태 재발을 막기 위해 제정됐다. 이 법은 금융회사에 대한 규제 및 감독 강화, 금융감독기구 개편, 중요 금융회사 정리절차 개선, 금융지주회사 등에 대한 감독 강화, 지급결제 시스템에 대한 감독 강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은행이 높은 수익을 올리기 위해 자기 자산이나 차입금으로 채권과 주식, 파생상품 등에 투자하는 행위를 제한하는 볼커 룰도 포함돼 있다.
미 재무부는 규제와 관련해 언급조차 하지 않았으나 FTA 미국 측 대표단의 마이크 프로만은 ‘금융시장 진입’이 회담의 이슈여야 하지만 규제는 제외돼야 한다고 밝혔다.
규제를 완화하는 데 논의 자체를 하지 않겠다는 미 정부의 입장에, 켄 벤센 증권산업금융시장협회 회장은 “만약 금융 분야를 논의에 포함하지 않는다면 기회를 놓치는 것이 될 것이고 우리는 유럽과 계속 논의해야 하며 유럽 역시 협상 테이블에서 논의하길 바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금융관련 규제 완화가 목적인 EU 당국자들도 발끈했다. EU 측 FTA 대표단인 나디아 카비뇨 금융서비스 최고 담당자는 “미국이 우리 시스템은 믿지 못하면서 자기들 규제만 적용하려 하느냐”며 강하게 비난하기도 했다.
유럽에 있어 금융 서비스는 농업 못지않게 중요한 분야다. FT에 따르면 2012년 전세계 은행 자산 중 유로존의 은행 자산은 30조7000억달러, 미국은 13조9000억달러로 미국보다 2배 이상 많다.
낮은 경제성장률과 높은 실업률 등 경기 침체에 빠져 있는 유럽은 미국과의 FTA를 통해 회복을 꾀하고 있으며 오는 2014년 말까지 협상 완료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회담 전부터 EU 관료들을 대상으로 한 미 국가안보국(NSA)의 정보수집 사실이 드러나며 협상은 처음부터 난항을 겪고 있다.
문영규 기자/ygmoo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