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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술시장 누비는 경제학자 서진수 “창조경제는 미술을 필요로 한다”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 여기 미술에 푹 빠진 경제학자가 있다. 경제학사를 전공한 서진수 교수(57, 강남대 경제학과)다. 그는 강의가 없는 주말과 방학에는 전세계 미술품경매장과 아트페어를 열심히 누빈다. 또 지난 2008년부터 아시아미술시장연구연맹(AAMRU)의 창설을 주도했고, 도쿄와 베이징, 타이페이에서 특강도 여러차례 했다. 경제학 논문 외에, 아트마켓을 분석한 논문을 연달아 발표하고 있다. 모두 피(?)같은 자기 돈을 써가면서다. 그를 두차례에 걸쳐 만났다.


-‘미술시장연구소’란 간판을 내건지 올해로 꼭 10년이다. 지금까지 미술시장 연구를 위해 쓴 돈이 수억대라고 들었다.

▶하하. 맞다. 내 교수 월급의 4분의 1은 썼으니까. 강연료와 원고료도 모두 쏟아부었다. 암각화에 매료돼 여름방학이면 러시아와 몽골에 한달씩 머물며 암각화 탐사를 5년간 했다. 5000만원을 썼다. 아트마켓 조사를 위해 도쿄와 베이징은 몰론이고 두바이, 베네치아까지 자비로 오가고 있다. 그런데 쓴 돈 보다 번 게 더 많다. 난 독특한 사람이라 계산법이 좀 다르다.

인풋(input), 물론 엄청나게 들어갔다. 그러나 아웃풋(output)이 수백배다. 지난 10년간 국내외 주요경매장과 유수의 아트페어를 누비면서 걸작 미술품을 원없이 봤으니 남는 장사 아닌가. 난 10억원짜리 그림을 봤으면 ‘오늘 1억 벌었네’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수십억, 수백억원대 작품을 수십만점 보면서 안복을 실컷 누렸으니 나는 무척 행복한 사람이다.



-경제학 교수가 왜 미술이냐고 의아해들 한다.

▶그런 질문 많이 받는다. 미술시장연구소를 열면서 ‘미술과 자본의 아름다운 만남’이란 글귀를 전각으로 새겨 내걸었다.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않다. 문화경제학 연구자로서 요즘은 ‘경제가 미술을 필요로 하는 시대’임을 강조하고 싶다. 그것도 절실하게. 우리 삶에 있어서도 돈이 목표인 삶은 너무 건조하지 않던가. 문화예술이 목표인 삶은 그렇지 않다. 풍요롭다. 경제가 발전하면 그 끝에는 예술이 있다. 걸작도 그 중 하나다. 멋진 미술품은 훗날 인류의 유산이 된다. 반 고흐, 피카소, 마그리트가 좋은 예다. 벨기에 브뤼셀에는 마그리트의 작품을 보러 연간 수십만명이 몰려든다고 한다. 패러다임의 shift, 즉 사고의 전환이 필요한 시대이다. 

이우환 작가의 설치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한 서진수 교수                                                                                    [사진=고명진]
 

-중국 일본의 전문가들과도 공동으로 연구한다고 들었다

▶2012년부터 한국의 미술시장연구소, 중국의 예술시장 연구중심, 일본의 미술시장 전문가 등이 모여 아시아 미술시장 연구연맹을 결성했다. 오는 8월에 공동연구와 보고서를 발간한다. 아시아지역 미술시장 발전을 함께 도모하고 있다.



-요즘 우리 미술계는 전례없는 불황이라고 아우성이다. 위기로 보는가.

▶중국과 홍콩에 비해 한국은 경기침체가 심하다. 대형화랑들이 규모를 축소하고 있고, 직원을 줄이는 등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대관화랑들도 대관이 안돼 울상이다. 중견 원로작가들은 판매부진을 우려해 작품전을 못열고 있다. 도록제작업체도 아우성이고, 잡지도 휴폐간이 속출하고 있다. 불황의 골이 상상 이상으로 깊다. 2차 시장인 경매시장도 마찬가지다. 고가작품의 거래가 잘 안되다 보니 좋은 작품의 소싱이 안되고 있다. 유찰되거나 터무니없는 가격에 낙찰될까봐 좋은 작품을 내놓질 못하는 거다. 제3시장인 아트펀드도 별로 성과가 좋지 않다.


-2000년 이후 한국 미술시장을 진단한다면

▶2005~7년 뜨거운 호황기였다가 2008~9년 쇠퇴기를 거쳐 2010년 잠깐 반등하는 듯하더니 2011년이래 3년째 계속 침체기이다. 침체기가 길어지면 한국미술사의 암흑기가 된다. 이래서야 미술문화가 발전할 수 없다.


-최근들어 ‘미술=비자금, 불법’으로 인식하는 이들이 많다.

▶어느 시대에나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은 있게 마련이다. 극히 일부에서 발생한 불법을 전체로 확대해석하는 건 곤란하다. 우리는 분별력부터 키워야 하는데 감정을 키우는 경우가 더 많다. 안타까운 일이다. 기본적으로 미술시장은 아름답다. 대다수 작가들은 경제적 어려움을 참아가며, 예술혼을 불태우고 있다. 절약과 숱한 망설임 끝에 구입한 조그마한 작품에서 무한한 행복을 느끼는 컬렉터들이 더 많다. 그들을 매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노충현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는 국제갤러리를 찾은 서진수 교수                                                                        [사진=고명진]


-하지만 아트컬렉터를 바라보는 이들의 시각은 좋지 않다

▶정부와 사회의 시각이 중요한데 요즘 너무 부정적이다. 이는 매우 심각한 문제다. 미술시장이 성숙기에 진입한 미국 영국 독일 등은 정부와 사회가 아트컬렉터에 대해 지원책과 육성책을 썼다. 앤디 워홀, 잭슨 폴락 같은 수퍼스타도 그래서 탄생했다. 반면에 우리는 작품을 수집, 기부하는 문화가 형성되기도 전에, 부정적인 인식이 먼저 자리를 잡았다. 아트컬렉터가 열정을 다해 수집한 작품들은 통상 3세대 정도가 지나면 공공의 것이 된다. 문화선진국의 미술관들이 이를 증명해준다. 자식 대를 지나면 미술관에 기증하거나, 미술관을 지어 사회에 공헌하게 돼있다. 따라서 이들의 수집을 독려해야 한다.



-미술품에 대해 일반인들이 오해하고 있는 측면이 있나?

▶미술품은 ‘예술성’과 ‘가격’이란 두가지 측면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선 예술성에 대한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2005~7년에 일었던 미술시장 붐 기간에 ‘가격’ 얘기만 팽배했다. 미술시장의 기준을 가격에만 맞췄던 것이다. 어떤 작가의 작품성향을 이해하려하기 보다, 누가 뜰 것인지, 누가 돈이 될 것인지에만 관심을 두었다.



-미술이 미래 세대를 위해 중요한 항목이라 보는 이유는

▶경제개발 단계와 성장 단계를 지나 이제 한국은 창조경제를 내세우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런데 창조산업이 크려면 핵심 창조예술이 더 발전해야 한다. 즉 문학 음악 공연예술 시각예술의 발전이 필요하다. 문화융성국가가 되기 위해선 핵심예술을 키우고 지원해야 한다. 조앤 롤링의 문학 ‘해리포터’가 있었기에 영화며 기타 장르가 동반성장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우리는 기초투자를 소홀히하는 측면이 있다. 정부가 방송 광고 게임 만화 등을 콘텐츠산업으로 키우고 있는데 시각예술은 아쉽게도 빠져 있다. 결국 개인과 기업이 미술시장을 키우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컬렉터 숫자가 너무 뻔하고, 작품 거래총액도 서구에 비하면 너무 적다. 기업과 개인이 문화예술에 관심을 가지려 해도 잘 안된다. 이래서야 양질의 콘텐츠가 나올 수 없다.


-그렇다면 정부는 문화융성을 위해 무얼 해야 하나

▶제조업의 발전 못지않게 소프트한 문화예술이 발달해야 한다. IT기술과 음악, 미술 등이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게 중요하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우리 IT제품의 판로를 더욱 활짝 열어주었다. 우리 것을 비싼 값에 팔려면 우리 문화예술의 수준이 높게 평가돼야 한다. 크리에이티브를 말로만 외칠 게 아니라 기업의 종사자, 또 전체 국민들이 색, 형태, 디자인을 제대로 알고, 이에 대한 감성적 수준을 세련되게 끌어올리는 게 중요하다. 기초예술에 대한 투자가 활성화되어야 경제와 문화가 융성해진다.

각종 전시팜플렛이 비치된 서가에서 도록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고명진]

-우리는 미술의 ‘공공(퍼블릭) 수요’가 거의 없다. 창출안이 있나?

▶한국은 등록미술관이 145개다. 그러나 글로벌 스탠다드로 봤을 땐 고작해야 10개 미만이다. 미술관의 주기능은 감상과 교육인데 이를 제대로 하고 있는 곳은 불과 손으로 꼽을 정도다. 미국 독일 프랑스 영국 일본에 비해 너무 열악하다. 미술관은 좋은 컬렉션이 있어야 하고, 전문인력이 있어야 하며, 연구 전시 교육이 이뤄져야 하는데 아직 많이 미흡하다. 전국적으로 두세군데 미술관을 빼곤 컬렉션 예산도 너무 미미하다. 국립현대미술관 작품 수집예산이 연 30억인데 100억원으로 늘려야 한다. 전국의 시립미술관도 수집예산을 각 50억원으로 늘려야 한다.


-작가들을 육성하려면 작품을 사주는 게 첫째라고 주장하는데.

▶정부와 기업이 작업실이며 창작레지던스를 많이 만들고 있는데 우선 작품을 사줘야 한다. 그래야 물감도 사고, 작업을 할 수 있다. 현재 한국의 미술작가는 대략 3만~4만명인데 미술시장 규모는 고작 4500억원이다. 미술가들의 1인당 연평균 수입은 1100만원에 불과하다. 매일매일 반(半)지하 셋방에서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분투하는 이들이 너무 많다, 문화예술이 배고파야 된다는 건 옛날 이야기다. 박근혜대통령이 오는 10월 3일 코엑스에서 개막되는 KIAF에 들러 작가들의 작품을 둘러보고, 마음에 드는 그림 한두점 사주었으면 좋겠다. 큰 힘이 될 것이다.


-요즘 정부가 창조경제를 많이 외친다.

▶창조경제를 위한 인프라가 바로 뮤지엄이다. 문화는 형성하는데 100년, 소멸되는데도 100년이 걸린다. 투입대비 산출로 투자할 게 아니라 역사성을 갖고 길게 봐야 한다.


-미술을 뮤지컬처럼 소비하라고 주장한다. 그것이 가능한가?

▶각 가정에서 미술에 관심이 있느냐, 없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미술품 구입한 금액이 500만원 이상인 가정이 참 드물다. 집안의 가장 핵심적인 장소에 괜찮은 그림이 걸려 있느냐, 아니면 초대형 TV가 있느냐 묻고 싶다. 그 작은 차이가 나중에 큰 차이를 만들 수도 있다.


- 미술시장에서도 미술사가 중요하다고 했는데.

▶작가, 유통기관, 컬렉터의 희망은 모두 같다. 작가는 미술사에 남길 원하고, 유통기관은 미술사에 남을 작가를 육성하기 위해 노력한다. 컬렉터도 미술사에 남을 작가의 작품을 사길 희망한다. 그 시대에는 잘 팔리지 않았으나, 결국 미술사가 조명하니 판매가 늘고, 가격도 상승한다. 박수근, 이중섭에 이어 요즈음 김환기가 인기를 끄는 이유도 작품수, 작품의 수준, 한국적인 작품을 한 작가 등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면서 가장 뜨거운 작가가 되고 있는 것이다.

G서울13 아트페어의 제임스 코헨 갤러리 부스에서.                                                                                              [사진=이순심]

-1인 3역,4역을 소화하니 무척 바쁠텐데

▶원칙을 정해놓고 움직인다. 학교일과 미술쪽 일이 겹치면 단연 학교일이 우선이다. 가족들과는 일요일 낮부터 밤까지 함께 한다는 원칙을 정해놓고 산다. 또 좋은 미술품을 수없이 마주치며, 때론 ‘저 그림 사고 싶다’는 유혹에 빠질 때도 있지만 ‘감상만 하자’는 게 내 원칙이다. 해외 아트페어와 미술경매에 내가 그렇게 많이 다녀도 아내가 안심(?)하는 것은 내가 그림을 사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지난 10년간 중국작가 작품이 5~10배씩 뛰는 걸 목도하며 구매충동을 느끼진 않았는지?

▶펑정지에 등 몇몇 중국작가들과 가깝게 지내고 있다. 그들의 작품을 사려고 들었다면 얼마든지 샀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기록자이자 연구자’라는 원칙을 정하고 지키고 있다. 그래서 마음이 늘 홀가분하다. 좋은 작품을 보면서 나의 인생의 폭과 깊이가 엄청나게 넓어졌으니 돈 번 것 이상 아닌가. 과거의 나는 원칙과 규율만 중시했는데 요즘은 훨씬 유연해지고 여유로와졌다, 다양성도 인정하게 됐다. 이젠 노란색 셔츠까지 자연스럽게 입고 다닌다.

뉴델리에서 열린 ‘아트 인디아’에서 인도 작가 산토쓰와 함께 했다.

-언제 봐도 무거운 카메라와 수첩, 아이패드를 들고 다니더라

▶그렇다. 사회과학자로서 자료와 정보는 생명이다. 늘 사진기를 갖고 다니며 현장을 열심히 기록하는데 확인해보니 2011년 1만4800컷, 2012년 1만1729컷(81기가바이트)을 찍었더라. 1테라바이트(1000GB)인 외장하드의 용량도 꽉 찼다. 이를 모두 자료화해놓았다. 그러니 난 부자다.


-열심히 작업하는 젊은 작가들과 종사자들을 이따금 챙긴다고 들었다.

▶개인적으로 동양화 작가와 서예가들에게 관심이 많은 편이다. 아트페어를 다니다가 우리 동양화 작가들이 작업에 참고하면 좋을 듯한 작품과 자료가 있으면 사다가 주곤 한다. 가끔 힘내라고 밥도 산다. 직장을 그만둔 젊은 딜러에게 ‘홍콩마켓 좀 참관해보자’하고 함께 데려가기도 했다. 대단한 건 아니지만 많은 후배와 작가들이 힘을 내, 미래 한국 미술계를 좀더 풍성하게 만들었으면 좋겠다.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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