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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크엔드] “고급인력 우선 지원” 이민정책 손질…불황에 ‘톨레랑스’<관용> 도 위축
전세계 다문화정책 재정비 가속
이민자·자국민 동등한 처우에 반발
美·유럽 경기침체 틈타 잇단 우향우

美 새 이민정책 산업경쟁력에 초점
호주·칠레 등 창업가 모시기 혜택

언어·문화 다양성 증진 정책지원
통합정책 보완…‘샐러드볼’ 사회로




‘흑백 차별이 없는 세상.’

남반구 저너머에서 죽음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넬슨 만델라 남아프리카공화국 전 대통령은 27년간의 감옥생활을 견디면서도 누구나 자유와 평화를 누릴 수 있는 세상을 꿈꿨다.

만델라 전 대통령이 목숨을 걸고 철폐하려던 남아공의 극단적 인종차별정책 ‘아파르트헤이트’는 1994년 그의 대통령 취임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이민자 증가에 따른 전 세계적 인종, 민족, 종교 간의 갈등은 불황의 긴 터널 속에서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

이민자 소요사태로 한바탕 몸살을 앓은 서방 국가들은 이민 정책과 다문화 정책 재정비에 들어갔다. 다양한 문화가 한데 어우러진 ‘샐러드볼’ 사회를 향한 사회통합 정책도 강화되고 있다.

▶불황에 ‘톨레랑스(관용)’는 없다=유럽과 미국을 뒤흔든 경기침체는 ‘문화공존’의 표상이었던 서방 국가를 강타했다.

‘아메리칸 드림’으로 대변되는 미국에서는 반(反)이민 정책을 내세우는 티파티가 세를 불렸고, 영국에서는 대규모 이민자 폭동으로 국가 비상사태까지 선포됐다.
 
미국의 이민사회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멜팅폿(Melting Potㆍ용광로)’의 포스터(작은 사진).‘ 멜팅폿’은 다양한 문화가
용광로처럼 녹아들어 새로이 창조되는 문화를 뜻하는 말이다. 하지만 이는 소수 문화가 다수 집단에 녹아 흡수되는
의미가 강해 최근에는‘ 소프트볼’ 사회라는 용어가 쓰인다. 다양한 문화가 샐러드의 여러 재료들처럼 각각의 독특한
특징을 잃지 않은 채, 전체적으로 조화되는 다문화 사회를 말한다. 오른쪽은 지난 5월 1일 노동절을 맞아 미국 시애틀
에서 이민자단체연합이 이민자들의 권리를 보호하라며 가두시위를 벌이는 모습.                         [사진제공=더콜럼비안]

‘톨레랑스’의 나라, 프랑스와 복지 선진국인 북유럽에서는 극우정당이 출현했고, ‘이민천국’인 호주는 ‘빅오스트리아 정책(이민으로 인구 증가)’의 전면 재검토에 들어갔다. 특히 유럽인들은 재정위기로 살인적인 실업률 속에서 자국민과 동등하게 대우받는 이민자들에 대한 반발심이 고조되면서 극우정당의 입지를 더욱 강화시켰다.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이민자들의 값싼 노동력에 힘입어 경제성장을 일군 선진국들이 최근 불황의 탓을 이민자들에 돌리면서 문화갈등이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급인력 우선” 이민정책 손질=하층민으로 전락한 이민자들을 주축으로 대규모 소요 사태를 겪은 서방국가는 이민 정책에 메스를 들었다.

‘인종의 용광로(멜팅폿)’의 상징인 미국은 2007년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이민법 개혁이 실패한 후 6년 만에 대대적 손질에 착수했다.

이번 개혁안은 ▷1100만명에 달하는 불법 체류자들에 시민권 취득 기회 부여 ▷고학력 전문직을 위한 별도 비자 발급 ▷국경 경비 강화가 주요 내용이다.

지난달 27일 상원을 통과한 이번 법안은 무엇보다 고학력 기술자들에게 문호를 개방해 산업경쟁력을 한 단계 높이겠다는 미국 정부의 의지를 담고 있다.

당국은 과학, 공학 등 소위 첨단기술(STEM) 취득자들에게 취업 비자를 발급해 장기적으로 1000만명 이상 고학력 기술자를 불러 모으겠다는 계획이다.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넘어온 이민자들로 넘쳐나는 프랑스는 2011년 새 이민법을 개정해 정부가 원치 않은 외국인 노동자는 추방하기 쉽도록 제도를 정비했다.

또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되는 과학자, 컴퓨터공학자, 예술가 등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에게 3년 거주 허가를 부여했다.

독일 역시 연간 4만4000유로(약6500만원) 상당의 연봉을 받는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외국인에게 비자를 내주는 ‘블루카드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 제도 도입으로 외국인들은 독일에서 대학을 졸업하면 직업을 찾을 수 있는 18개월의 시간이 보장된다. 독일은 2011년 기준 전체 인구(8183만명)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8.9%(736만명)에 달했다.

이 밖에 캐나다, 호주, 아일랜드, 칠레 정부도 비자와 세금 감면 등 각종 혜택을 내놓으면서 해외 창업가와 기술자를 모시기에 나섰다.

▶멜팅폿 넘어 샐러드볼 사회로=이민 정책이 보수적으로 돌아섰다고 해서 사회통합 정책이 소홀히 되는 것은 아니다.

1971년 ‘다문화주의’를 채택한 캐나다는 소수집단의 언어와 문화를 국가 정책적으로 강력히 지원해 이미 그 문화가 뿌리를 내렸고, 이민자 대상의 언어 교육이나 캐나다의 다양성을 증진하는 컨테스트 등으로 사회 통합의 분위기를 조성해 가고 있다.

미국은 문화적 다양성을 중심으로 이민자 교육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있다. 아동낙오방지법(NCLB법)이나 이븐스타트(EVEN START) 프로그램을 통해 소외계층 학생의 학력 증진과 다문화 문제를 계층별 격차 문제로 연결하여 지원한다.

호주는 사회 통합에 무게를 두고 있다. 문화 간 이해 교육을 바탕으로 인종차별주의나 선입견 극복에 힘을 쓰고 있다.

독일은 당초 ‘이민국이 아니다’는 인식이 강했지만 1990년 이후 EU 회원국 출신의 이민자 유입이 크게 증가하면서 2005년 ‘이민ㆍ난민청’을 설립해 강력한 사회통합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천예선 기자/che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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