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국가는 쿠테타 규정놓고 ‘모럴 딜레마’
[헤럴드경제=천예선 기자]이집트 사태가 임시 대통령 취임 등으로 빠르게 안정을 되찾고 있는 가운데 국제사회에서 군부 통치에 대한 우려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중동 헤게모니 다툼 속에서 이집트 사태를 쿠데타로 규정하지 않는 서방 국가들의 이중성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임시 대통령 취임 정국 급속 안정=이집트 군부가 무함마드 무스리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린지 하루도 채 안돼 아들리 만수르(67) 헌법재판소 소장이 임시 대통령에 공식 취임하면서 이집트 정국은 빠르게 안정을 되찾고 있다.
카이로에 있는 국가 기관과 기업도 이날 속속 문을 열었고, 한때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주유 대란, 정전 우려도 눈에 띄게 줄었다.
이집트 군부는 무슬림형제단 지도부 인사 200여명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하고 모함메드 바디에 의장을 체포하는 등 신속하게 과도 통치 체제를 정비하고 나섰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빠른 속도로 통치권을 장악하고 있는 이집트 군부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덴마크를 방문 중인 반 총장은 이집트 사태에 대해 “국민들의 요구와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면서도 “지금은 평화적인 방법으로 무너진 민주적 절차를 복구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네르스 포그 라스무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사무총장도 조속한 민간 통치로의 복귀를 촉구했다.
▶오바마가 ‘쿠테타’라 말하지 못하는 이유=서방 국가는 이집트 사태 때문에 ‘모럴 딜레마’에 빠졌다.
일각에서는 “이집트 사태가 냉전시대 도덕적 선택(moral choice)을 부활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파이낸셜타임즈(FT)의 논설위원 기드온 래치먼은 5일자 칼럼에서 “냉전시대 미국과 그 동맹국은 대안 부재로 쉽게 군부 정권과 동침해 왔었다”며 “소련의 붕괴로 우리는 이같은 추잡한 선택에서 자유로워졌지만, 이집트 사태는 불행하게도 복잡성과 혼란, 그리고 도덕적 타협이 국제 이슈에서 피할 수 없다는 점을 알려주고 있다”고 역설했다.
래치먼은 이집트 사태를 쿠테타로 규정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명확한 도덕적 분류를 좋아하는 서방 국가에 깊은 혼란을 주고 있다면서 “자유의 전사 vs 독재자, 민주주의자 vs 전제군주, 선 vs 악과 같은 도덕적 편가르기는 외교 정책 이해를 쉽게 하고 자국민 설득에도 도움이 되지만 이같은 단순한 도덕적 세계에서 쿠테타는 ‘악'이고 선출된 대통령은 ‘선’이라는 것이 문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오바마 대통령이 쿠테타의 ‘c’를 언급하지 않는 것은 그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미국이 ‘이집트 정부가 쿠테타로 전복 당했다’고 말하는 순간, 이집트에 대한 원조를 중단해야 하는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미국이 이번 사태를 쿠데타로 명시한다면 미국은 현행 법에 따라 오랜 동맹인 이집트를 상대로 한 연간 15억달러 규모의 군사 및 경제 원조를 중단해야 한다. 미국의 법령은 선출직 지도자가 쿠데타에 의해 추방된 국가에는 원조를 제공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 20년간 이집트는 통치한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 정권과 밀월관계를 바탕으로 중동에서의 입김을 키워왔다. 미국으로서는 이집트 군부가 중동 외교에 있어 다른 어떤 대안보다 훨씬 유용한 수단이었던 셈이다.
미국 하원 공화당 2인자인 에릭 캔터(버지니아) 원내대표 역시 “이집트 군부는 이 지역 안정에 있어 미국의 오랜 핵심 파트너였고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기관”이라며“민주주의는 선거가 전부는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천예선 기자/cheo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