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콘, 기술력 바탕 대형TV 진출
애플 하청업체서 당당히 독립선언
11조원 캡슐커피시장 놓고 특허전쟁
다윗 듀얼릿, 골리앗 네슬레에 승소
해외에서는 갑과 을의 상생과 동시에 골리앗에 대항하는 다윗의 반격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글로벌 기업의 갑의 횡포에 맞서 하청기업이나 중소경쟁업체가 독립을 선언하고, 나아가 시장 쟁탈전에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 예가 혁신의 아이콘 애플에 반기를 들고 최근 독립을 선언한 폭스콘이다. 캡슐커피 시장에서는 거대 공룡 네슬레와 ‘구멍가게’ 듀얼릿이 맞붙어 듀얼릿이 승리하는 등 일방적 주종관계였던 갑을관계가 상생ㆍ독립ㆍ경쟁 흐름으로 다각화하고 있다.
▶애플에 반격하는 폭스콘=지난 5월 초 대만에 본사를 둔 중국의 IT 제조업체 폭스콘은 전례없는 이상한 행보를 보여 눈길을 끌었다.
애플이 만든 아이폰은 MP3 및 동영상 플레이어, 휴대폰, 카메라 등 IT 업계가 급격히 발달하면서 출현한 전자 소비재들의 장점을 한 기기에 융합한 혁신적 제품이다. 오늘날 애플이 새로운 전성기를 구가할 수 있게 해 준 효자 품목이다. 아이폰의 출현으로 세계 모든 휴대폰이 아이폰과 비아이폰으로 양분될 정도였다. 전 세계인들에게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친 업계의 ‘게임체인저’였다.
폭스콘은 이러한 아이폰의 등장과 세계 제패 등 역사적 순간을 함께한 애플의 하청업체였다. 갑인 애플의 지시에 따라 값싼 노동력으로 고가의 아이폰을 충실하게 만들어 아이폰이 세계를 제패하고 애플이 전 세계 시가총액 1위 기업에 등극하는 데 일조한 훌륭한 을이었다. 그런 폭스콘이 지난 5월 초 애플로부터의 독립 의지를 시사했다. 폭스콘은 그동안 하청업체로서 묵묵히 쌓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자사가 개발한 고유의 제품인 대형 평판 TV를 주력 상품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움직임은 을인 폭스콘이 오히려 갑인 애플로부터 당당히 독립을 선언한 것으로 비쳐졌지만 폭스콘의 말 못할 사연도 자리한다. 그동안 전 세계적으로 폭증하는 아이폰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비인간적 대우를 감수하며 희생한 폭스콘의 희생이 스며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폭스콘은 노동 착취와 근로자들의 연쇄 자살 사태로 걸핏하면 구설수에 올랐던 터였다.
▶11조원 시장 캡슐커피시장 놓고 경쟁하는 네슬레와 듀얼릿=최근 에스프레소 커피를 즐기는 플랫폼이 다양화되고 있다. 고급 에스프레소 커피를 즐기는 방법이 글로벌 기업 네슬레가 개발한 커피머신 ‘네스프레소’와 커피캡슐 출시로 더욱 다양화된 때문이다. 수백에서 수천만원에 이르는 고급 에스프레소 머신이 없어도 중저가의 이 커피머신과 개당 1000원 미만인 커피캡슐만 있으면 누구든 고급 커피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것이다.
그런데 네스프레소가 마련한 새로운 사업환경에 재빨리 적응해 틈새시장 공략에 성공을 거둔 기업이 있다. 네스프레소 커피머신에 호환이 가능한 커피캡슐을 출시한 영국의 중소업체 듀얼릿이다. 이 업체는 이 커피캡슐을 네슬레보다 30%가량 싸게 팔면서 시장을 석권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게임체인저’이자 ‘갑’은 네슬레, 네슬레가 구축한 새로운 환경에 기생하는 듀얼릿은 ‘을’이라 할 수 있다.
갑인 네슬레는 을에 대해 특허 침해라는 명목으로 고소했다. 100억달러에 이르는 캡슐커피 시장을 놓고 법적 쟁탈전이 벌어진 것. 업계에서는 이 싸움을 다윗(듀얼릿)과 골리앗(네슬레)의 싸움으로 봤다. 연 매출액 1500만파운드(약 256억원)인 듀얼릿은 소송비용인 100만파운드에도 쩔쩔매야 했다. 반면 연 매출액 47억6000만달러(약 5조3169억원)인 공룡기업 네슬레는 듀얼릿의 5배에 달하는 변호인단을 꾸려 소송에 임했다.
극적이게도 영국 고등법원은 듀얼릿이 네슬레의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다며 을의 손을 들어줬다.
▶하청공장 붕괴로 드러난 글로벌 의류회사의 실태=지난 4월 24일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 외곽의 사바르 공단에서 9층짜리 건물이 순간 폭삭 내려앉았다. 이 사고로 1100명 이상이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어마어마한 사상자 수였다. 사망자 대부분은 여성 근로자였다. 이들이 일하던 붕괴된 건물의 열악한 근로 환경에서는 갭(GAP)이나 H&M 등 글로벌 의류회사 상표가 찍힌 옷들이 대량으로 발견됐다.
이 건물은 글로벌 의류회사들이 생산비용을 줄이기 위해 벌떼처럼 모여든 세계에서 가장 근로자 임금이 낮은 의류 생산공장이었던 것이다. 건물이 붕괴될 당시 이 건물 안에는 3600여명의 근로자가 일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 중 2500여명이 구조됐고 1100여명이 사망했다. 사망자 대부분이 의류공장 노동자였다. 이 사고는 글로벌 의류시장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갑과 을의 적나라한 세력 관계를 여실히 보여줬다. 거대 자본을 바탕으로 한 글로벌 유명 의류기업은 ‘갑’, 세계에서 가장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며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목숨을 담보로 일하던 방글라데시 근로자들은 ‘을’이었다.
. 김수한 기자/sooha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