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화나 중국 위안화가 북한 원화보다 더 많이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로이터통신은 이 같은 현상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북한 경제 장악력이 얼마나 약한 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라고 3일 보도했다.
북한 전문가와 탈북자들은 북한의 외국 통화 선호 현상이 더욱 빨라진 시점을 2009년으로 보고 있다.
그해 11월 북한은 구권 100원(현금)을 신권 1원으로 바꾸는 ‘제5차 화폐 개혁’을 실시했다.
높은 물가를 잡고 ‘시장 세력’을 제거해 후계체제의 조기 안정화를 꾀하려는 목적이었지만 주민들은 화폐개혁 때 자신들이 가진 돈을 신규 화폐로 교환하지 못한 경험 때문에 원화를 믿지 못하게 됐다.
화폐개혁 이후 달러 대비 북한 원화 환율은 1달러당 30원에서 8500원까지 떨어졌다고 대북매체 데일리NK는 전했다.
현재 공식 환율은 달러당 130원이다.
북한 화폐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지면서 달러화나 위안화와 같은 국제 통화가 모두 인기가 있지만 중국과 교역이 늘면서 특히 위안화 인기가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데일리NK의 크리스토퍼 그린 국제문제 담당자는 “중국과 접한 북한 국경 지역에서는 거래의 90%가 외국 화폐로 이뤄지고 있으며 다른 지역 사설 시장에서도 외국 화폐 거래비중은 50∼80%에 달한다”고 추정했다.
접경 지역의 중국인 무역상들에 따르면 북한 관리들도 식량보다 더 위안화를 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데일리NK가 지난 2월 북한 혜산의 장마당 모습이라며 공개한 비디오를 보면 상인이 상의와 장갑 같은 물건값을 위안화로 부르고 돈을 받는 장면들이 나온다.
또 탈북자의 70%가량이 한 해 1000만 달러(약 113억원)를 북한 친척들에게 보내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들이 중국을 통해 돈을 보내면서 위안화가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
북한은 지난해 9월부터 외화 유통을 사형에 처할 수 있는 범죄로 다스리고 있다고 프랑스 파리에 본부가 있는 국제인권연맹(FIDH)이 지난달 보고서에서 지적했다.
북한 당국의 단속 의지에도 외화가 더 많이 유통되면서 독자적인 경제 정책을 펼치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분석이다.
동용승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지난달 보고서에서 북한 경제 규모가 215억 달러(약 24조2600억원)인데 20억 달러(약 2조2570억원)가량의 외국 화폐가 유통되고 있다고 추정했다.
20억 달러 중 절반가량은 달러화였고, 40%는 위안화, 10%는 유로화였다.
미국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의 북한 문제 전문가인 마커스 놀랜드 연구원은 “달러와 위안화 사용이 너무 사회 깊숙이 퍼져 있기 때문에 북한 정권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며 “지난 20년간 북한 정권은 시장을 억누르고 국민이 북한 화폐를 사용하도록 강제했으나 어느 것도 이뤄내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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