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축서 성장으로 정책 선회
中企에 저금리대출 직접지원
유럽의 긴축 강경론자 독일이 성장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그동안 역내 재정위기국들에 긴축만이 해법이라고 강요해왔던 독일이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경기침체가 개선되지 않자, 남유럽 경제 회복을 위해 직접 지원에 나서기로 ‘정책 선회’를 공식 선언했다. 이른바 독일발 ‘미니 마셜플랜’이다.
마셜플랜이란 2차세계대전 후 미국이 유럽 16개국에 제공한 대외원조계획을 말한다.
유럽 1위 경제대국인 독일은 재정 부실국의 중소기업을 국영 재건신용은행(KfW)을 통해 직접 지원할 방침이다. 독일 통일 후 동독을 재건시킨 경험을 살려 남유럽 국가의 경제 회복을 지원하겠다는 의도다.
특히 독일은 남유럽 청년실업 해소에 집중하고 있다. 스페인의 청년실업률은 55.7%, 그리스는 58.4%에 달한다. 이들 국가 청년의 10명 중 5~6명은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독일은 남유럽 중소기업들에 독일 기업과 같은 저금리 대출로 숨통을 틔워줘 실업 해소를 이끌어내겠다는 복안이다.
독일의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최신호에서 “독일 정부는 국영 재건신용은행을 통해 스페인 국영 신용개발은행(ICO)에 차관을 제공하고, ICO가 이를 기반으로 스페인 기업들에 저리로 대출하는 프로그램을 운용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이 같은 스페인 사례는 포르투갈과 그리스에도 청사진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은 이와 관련, “우리가 단지 저축왕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독일의 미니 마셜플랜이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KfW가 외국기관에 대출을 하려면 연방 하원의 승인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9월 총선을 앞둔 독일의 정국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하원 승인은 장담할 수 없다.
독일이 성장으로 선회한 데는 추락하는 대외 이미지와 9월 총선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남유럽 국가들에 긴축을 강요하면서 유럽 내 독일 이미지는 과거 나치정권에 비유될 정도로 악화됐다. 독일 정부는 향후 독일 주도형 유럽연합(EU) 정책에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또 9월 총선을 앞두고 앙겔라 메르켈 정부는 성장 정책을 요구해온 야당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부실국의 상황이 조금이나마 개선됐다는 점을 보여줘야 하는 부담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한편 유럽 내 탈(脫)긴축 바람도 계속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9일 EU 집행위원회가 역내 5대 경제국 중 3국인 프랑스, 스페인, 네덜란드에 EU가 정한 연간 재정적자 3% 제한 시한을 연장해주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EU는 이 같은 조치가 광범위한 개혁을 유도하고 역내 실업 위기를 해소하는 데 일조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천예선 기자/cheo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