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커들의 사이버 공격이 국가 간 사이버 전쟁보다 더 큰 위협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 돈을 노린 해커들이 글로벌 기업들을 해킹, 비리 폭로 등을 미끼로 돈을 요구하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국제적 사이버 공격이 수면 위로 떠오른 건 대만에 본사를 두고 있는 애플의 최대 글로벌 하청업체인 폭스콘이 경쟁사인 중국 BYD사의 사이버 악행을 최근 폭로하면서부터다.
BYD는 대만 폭스콘의 대항마로 부상 중인 중국의 대표적 전자제품 하청업체다. 투자 귀재인 워런 버핏이 이끄는 미국 투자회사 버크셔 해서웨이가 지분의 10%를 갖고 있다.
그동안 대만의 폭스콘, 퀀타, 콤팔 일렉트로닉스, 페가트론 등이 애플의 아이패드 등 유명 태블릿PC를 만들어왔다면, 중국 업체들은 이름 없는 태블릿 모조품을 만들었다. 그러나 올해 초 BYD가 세계 최대 PC 제조업체인 휴렛팩커드(HP)의 첫 안드로이드 태블릿 ‘슬레이트7’을 만들기로 하는 등 대만 업체들을 자극하는 경쟁자로 떠올랐다.
이러한 양사의 갈등 구도는 이미 오래 전인 지난 2007년부터 불거져 왔다. 당시 폭스콘이 근로자와 산업 기밀을 훔쳐갔다는 혐의로 BYD를 제소한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해커들은 지난 2008년 폭스콘의 e-메일 시스템을 해킹해 양사로부터 돈을 뜯어내려고 했다. 고조되는 양사의 갈등 구도 속에서 ‘사업 기회’를 포착한 것이다.
그 사건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폭스콘을 해킹한 범죄단의 계획은, 해킹한 정보로 양쪽으로부터 돈을 받는 것이었다”고 증언했다.
비록 폭스콘의 내부 정보를 BYD에 팔아 수익을 챙기려는 그들의 계획은 실패했지만, 이 사건은 현대의 사이버 공격이 어떤 형태로 진화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고 FT는 분석했다.
현재 인터넷 보안업체를 운영 중인 중국인 유명 해커 완타오는 “최근 ‘블랙 해킹(악의적 의도의 해킹)’이 기업간 분쟁의 수단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중국의 사니 중공업은 경쟁사인 줌라이언 중공업의 산업 기밀을 빼내기 위해 해커를 고용했다가 사니의 임원 3명이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미국 측은 이 같은 사이버 범죄가 대부분 중국발인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인터넷 보안업체인 맨디언트가 지난 2월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상하이 소재 인민해방군 소속 해커들이 오랫동안 고도의 해킹 작업을 통해 141개 기관의 데이터를 빼내갔다.
특히, 중국의 최신 해킹 범죄는 ‘애국적’ 목적이 아니라, 상업적 목적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커지고 있다. 쉽게 말해 돈만 주면 어떤 해킹이든 가능해졌다.
폭스콘 관계자는 “예전에는 ‘화이트 해킹(해킹 기술로 블랙 해킹에 맞서 싸우는 것)’ 수요가 많았지만 요즘은 상업적 해킹 수요가 훨씬 많다”고 말했다.
김수한 기자/sooha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