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전쟁속 세계각국 ‘금본위제’ 급부상
들썩이는 금값…기축통화 가치논쟁 지속
금은 구리족 원소로 원소기호는 Au이다. 라틴어 ‘빛나는 새벽’이라는 뜻의 ‘aurum’에서 유래됐으며, 영어의 ‘gold’는 산스크리트어에서 빛을 뜻하는 ‘jvolita’로부터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금은 공기나 물에서도 변하지 않고 강한 산화제를 사용해도 그 빛을 잃지 않아 은, 백금과 함께 최고의 귀금속으로 인정받으며 많은 나라에서 화폐의 기준으로 쓰인다.
그런데 수천년이 지나도록 전 세계 기축통화로서의 가치를 잃지 않고 있던 금의 위상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 같던 금빛이 퇴색되는 순간이 다가온 것인가.
▶금빛도 가끔 때가 낄 때가 있다… 변하고 있는 금의 가치와 위상=금은 많은 나라에서 최후의 결제수단이었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빛을 발하는 것이 바로 금이었다. 수세기 동안 최고의 안전자산으로 인식된 덕분에 1997년 IMF 외환위기 때는 금 모으기 운동을 통해 외화를 끌어다 모을 수 있었고,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에도 금값은 꾸준히 상승했다.
장기간의 가격 상승 추세를 뜻하는 이른바 슈퍼사이클은 금의 위상을 증명하는 현상의 하나였다. 자국 통화의 불안정성으로 세계 각국은 중앙은행을 중심으로 금 매입에 나서며 가격이 상승하기도 했고, 원자재 가격의 폭등과 함께 덩달아 가격이 오르기도 했다. ‘달러가 불안하니 금을 사라’는 말은 ‘금을 사면 손해는 안 본다’란 말이었다.
그런데 영원히 바래지 않는 빛, 안전자산으로서의 가치가 오히려 금의 발목을 잡았다.
지난 15일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서는 금값이 10% 가까이 폭락하며 1980년 이후 33년 만의 최대 낙폭을 경험해야 했다. 이른바 블랙먼데이. 전날보다 9.3%(140.3달러) 떨어진 온스당 1361.10달러로 장을 마감한 이날, 금은 다른 원자재 가격 하락도 함께 이끌었다.
은 가격은 하루 동안 11%가 빠져 온스당 23.36달러에 거래됐고 이는 종가 기준 2년 만에 가장 낮은 것이었다. 백금은 4.3%, 구리는 3.5%, 유가는 평균 2.8% 떨어졌다. 북해산 브렌트유는 배럴당 100.2달러로 3% 하락해 9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으며, 이와 함께 금과 관련한 주식들도 급락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세계 중앙은행들이 5600억달러(약 626조원)가량의 피해를 입은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게 다 금의 위상 때문이다.
금값 하락의 원인으론 중국의 성장률 부진과 유럽 경제위기 등이 거론됐다. 키프로스 정부가 구제금융에 필요한 자금 마련을 위해 금 10t을 매각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금속 원자재 수요가 가장 많은 중국의 성장률이 7.7%로 예상보다 낮았기 때문이다. 일시적인 금값 하락을 가져온 것은 비단 키프로스 때문만은 아니었다. 경기 침체가 지속되는 유로존의 이탈리아와 스페인, 포르투갈 등도 덩달아 금 매도에 나설 것이란 예상 때문이었다. 이탈리아의 금 보유량은 2451t으로 세계 4위이며,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금 보유량도 각각 382.5t과 281.6t가량이다.
그렇다고 금빛이 퇴색하는 순간이 다가온 건 아니다. 전문가들은 유럽 중앙은행들의 연이은 금 매도 가능성을 작게 봤고, 금값 하락 덕분에 오히려 수요가 급증했다. 금 최대 소비국인 인도에서는 한때 금과 관련한 귀금속 판매가 평년 수준의 2배인 4t까지 늘어나기도 했다.
짐 로저스 로저스홀딩스 회장은 한 인터뷰에서 “금 가격이 온스당 1300달러까지 떨어진다면 금을 사들일 것”이라고 했지만 금값은 이미 온스당 1400달러 중반을 넘어선 상태다. 금은 잠시 그 빛을 잃었을 뿐 아직 건재하다.
▶통화전쟁이 가져온 금본위제=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 유로존, 일본 등 세계 각국이 대규모 양적완화를 통한 환율전쟁에 뛰어들었다. 미국 달러화는 20세기 여러 차례 맞은 위기 속에서도 세계의 기축통화 노릇을 해왔지만 그 위상은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일본은 인플레이션을 위해 엔화가치 하락에 나라의 명운을 걸었다. 일본은행(BOJ)과 아베 정부는 엔저와 경기부양에 온 경제정책을 집중했다. 이 정도면 ‘총력전(Total War)’이다. 상대적으로 달러는 강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달러화의 위상을 지키고 환율시장의 안정을 찾자며 금본위제론이 대두되기도 했다. 한때 온스당 35달러로 고정돼 금 보유량만큼 달러를 찍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금본위제 폐지 이후 화폐 유통의 자율성을 가져왔어도 달러화의 가치는 지키기 힘들었다.
미국에서 단일 금본위제가 시행된 건 1873년이다. 대공황 이후 1933년 디플레이션 때문에 금본위제를 폐지했다가 2차세계대전 이후 1944년 극심한 인플레이션에 세계 무역안정화를 목적으로 브레턴우즈 체제를 출범시키며 부활했다. 그러다 베트남전 이후 재정지출이 막대해지자 1971년 금본위제를 다시 폐지하기에 이른다.
달러화의 고유 가치를 지키고자 미국에선 지난해 9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공화당이 금본위제 부활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재정적자와 통화증발은 해결하지만 양적완화는 포기하겠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 미국에 금본위제가 도입될 가능성은 작다.
2012년 로이터가 조사한 실제 미국 통화량은 2조5600억달러, 금 보유량은 2억6200만온스로 이는 온스당 1만달러에 가깝다. 금본위제를 도입하면 온스당 1400달러인 금값이 1만달러의 가치를 얻기 위해 폭등할 것이란 전망이다. 안정성이냐 자율성이냐, 금본위제 도입 여부는 동전의 양면처럼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안전자산으로서 금의 가치가 담보돼야 도입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최근 휘청거리는 가격 덕분에 금이 안전자산으로서의 가치를 잃어 심지어는 부동산, 셰일가스, 우유도 안전자산이 될 수 있다는 의견까지 있었다. 금의 슈퍼사이클은 끝났다는 말도 있었다. 그러나 흔들리던 금값은 금세 안정을 찾아 안전자산의 지위를 회복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문영규 기자/ygmoo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