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 정부부채율 일제 상승
스페인·포르투갈 등 적자 휘청
“긴축정책, 정치적 한계 도달”
경제정책 긴축서 성장으로 수정
“시장은 과도한 재정적자를 싫어하고 급격한 재정지출 삭감에 박수를 보내지만, 동시에 저성장이나 마이너스 성장도 싫어하는 두 얼굴을 갖고 있다.”(2011.8 라가르드 IMF 총재)
시장이 본색을 드러냈다. 2년 전 유로존 재정위기 한복판에서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주장한 것처럼 재정난이 3년을 지나도록 돌파구를 찾지 못하자 역내 지도자가 긴축에서 성장으로 전략 수정에 나서고 있다. 유로존은 다음달 15일 발표되는 올해 1분기 성장에서 6개 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예고하고 있다.
▶긴축, 효과 없었다=2009년 말 촉발된 유럽 재정난을 타개하기 위해 위기국이 허리띠를 졸라맸지만 이 같은 노력이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워싱턴포스트(WP)는 22일(현지시간) “유럽의 긴축정책이 지난해 큰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면서 “특히 스페인ㆍ포르투갈의 지난해 재정적자와 정부 부채는 오히려 늘었다”고 보도했다.
유로존 통계청인 유로스태트가 22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포르투갈의 지난해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6.4%로, 전년 4.4%에서 2%포인트 증가했다. 스페인 역시 전년 9.4%에서 10.6%로 유럽 최고치를 기록했다. 다만 유로존 전체의 재정적자는 독일의 흑자 덕에 전년 3910억유로에서 지난해 3530억유로 수준으로 떨어졌다.
유럽존 전체의 재정적자는 줄어들었지만, 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은 그리스를 제외하고 모두 상승했다. 스페인은 이 기간 108%에서 124%로 상승했고, 이탈리아도 127%로 6%포인트 상승했다. 그리스도 170%에서 157%로 감소했지만 역내에서 부채 비율이 여전히 높다.
유로존 17개국의 평균 부채 역시 이 지역이 다시 경기침체에 빠지면서 GDP 대비 지난해 90.6%로 한 해 전의 87.3%에서 증가했다.
신문은 “관련국이 긴축재정의 충격으로 휘청거리고 있다”고 평가했다.
▶“긴축, 만병통치약 아니다” 한목소리=세계 정ㆍ재계 지도자는 긴축에 속도조절을 해야 한다는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조제 마누엘 바호주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22일 유럽의 긴축이 정치적 한계에 봉착했다고 우려했다.
23일자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바호주는 “근본적으로는 긴축이 올바른 정책이지만 한계에 도달했다고 본다”면서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적절히 설계돼야 할 뿐만 아니라 최소한의 정치적ㆍ사회적 지지 역시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속도를 미세 조정하기 위한 논의는 언제든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핌코의 공동 최고투자책임자(CIO)인 ‘채권왕’ 빌 그로스는 이날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영국과 대부분의 유럽 국가가 긴축조치, 단기적으로 재정삭감 조치가 실질적인 성장을 낳는 방법이라고 믿는 것은 실수”라면서 “각국은 지출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라가르드 총재는 18일 “경제성장이 여전히 부진한 상황에서 재정적자 감축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위험하다”면서 “특히 미국과 영국에 단기 적자감축 규모를 축소하라”고 요구했다.
유로존 실무담당자도 긴축에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프랑스의 피에르 모스코비치 재무장관은 17일 “프랑스의 올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이 3.7%에 이를 것”이라며 EU 회원국이 지난해 3월 체결한 신재정협약인, 올해부터 재정적자 비율을 GDP의 3%로 낮춰야 한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겠다고 공언했다.
스페인의 루이스 데 귄도스 재무장관은 “재정 정상화와 성장이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면서 양자는 양립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긴축 강경론자인 독일 내에서도 긴축 완화 분위기가 포착된다.
중도우파 사민당 총재인 페어 슈타인브뤼크 전 독일 재무장관은 “그리스ㆍ포르투갈 같은 국가는 현재 과도한 긴축으로 성장이 낮아지고 실업이 높아지는 악순환에 빠져 있고, 일부 국가에서는 청년 실업률이 50%를 웃돌고 세수가 줄어들고 있으며, 신용평가회사가 국가신용등급을 강등하면서 다시 악순환이 시작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재정 정상화를 추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그 복용량이 치사량이 돼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천예선 기자/cheo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