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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쉼표> 책의 날
바르셀로나의 관광명소 중 하나로, 예술인 거리로 불리는 람블라는 4월이 오면 골목마다 술렁대기 시작해 4월 23일에는 거리 전체가 인파로 발 디딜 틈 없이 빽빽해진다. 바르셀로나의 모든 책과 사람이 다 람블라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까닭이다. 스페인 ‘책의 날’인 이날 길가에는 천막 책가게가 줄줄이 늘어서고, 가득 쌓인 책 사이를 느긋하게 오가며 사람들은 행복해한다. 여기에 장미꽃을 건네며 사랑을 고백하는 날이다 보니 이날만큼은 얼굴을 찡그릴 일이 별로 없다. 이날 하루 책은 약 50만권, 장미꽃은 400만송이가 팔려나간다. 축구의 도시 바르셀로나가 책을 가장 많이 출판하는 도시란 사실이 놀랍다.

스페인 책의 날은 1922년 ‘돈키호테’의 작가 세르반테스의 탄생일인 10월 9일을 기념해 시작됐다가 탄생일과 서거일(4월 23일) 중 옥신각신 끝에 1931년 서거일이 전통적인 성 조지 축일, 장미축제와 만나면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다. 책의 날은 스페인내전 때도 이어져 금서나 불법 출판물을 만날 수 있는 장이 되기도 했다.

4월 23일은 셰익스피어의 서거일이기도 하다. 1995년 유엔 교육과학문화기구는 독서진흥을 목적으로 스페인의 책의 날을 이어받아 이날을 세계인의 ‘책의 날’로 정했다. 한국도 이때부터 책과 장미꽃을 선물하는 행사를 벌이고 있지만 분위기는 영 신통치 않다. 지난해 책의 해로 정해 다양한 행사를 벌였는데도 책 읽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책을 읽지 않는다고 바로 문제가 일어나는 건 아니지만 장기적으로 정신적 역량이 떨어지면서 쇠퇴하는 건 자명하다. 지난해 출판종수가 전년 대비 10% 가까이 줄어 3만9700여종이 나왔다. 115년 전, 독일에서 출간된 책이 2만4000여종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낯이 뜨겁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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