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 재무회의서 공식 면죄부
332조엔 운용 日 생보사 등
신흥국 주식·채권으로 대이동
와타나베 부인도 “美·加·유럽으로”
고수익 투자 ‘엔 캐리 트레이드’ 부활
국제사회의 ‘엔저 공인(公認)’으로 일본 자금의 대이동이 본격화되고 있다.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ㆍ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 일본의 무차별 돈살포를 용인해 줌으로써 추가 엔저(엔/달러 환율 상승)에 날개를 달아줬다. 이에 따라 이번주부터 일본의 대형 기관투자자와 개인투자자들의 자금이 속속 해외시장 공습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332조엔 깔고 앉은 생보사 해외로=일본의 4대 생명보험회사는 22일부터 2013회계연도(2013.4~2014.3) 투자 계획을 발표한다. 이들은 현재 총자산의 44%를 차지하고 있는 일본 국채 투자 비중을 줄이고, 신흥국 주식과 대안투자 자산을 증가시킬 계획이다.
일본 6위 생보사인 미쓰이생명은 “총자산 6조5000억엔(72조9000억원) 중 해외 채권 투자 비중을 600억엔(6736억원)까지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일본생명보험협회의 대표이자 업계 3위 메이지야스다생명보험 회장인 마쓰오 겐지도 지난 19일 “외국 채권 매입을 늘리는 것이 일본 국채 수익률 저하에 대응하는 하나의 옵션”이라고 말해 포트폴리오 수정을 기정사실화 했다.
시장 관계자들은 이들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332조엔(한화 3727조원)의 자금을 운용하는 생보사가 투자 계획을 약간만 수정해도 파급력은 엄청나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연기금 중 하나인 일본국민연금(GPIF)의 미타니 다카히로 이사장도 “신흥국 증시 투자를 늘리겠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말 기준 총 120조엔(약 1347조원)의 자산을 보유한 GPIF는 이 가운데 64%를 일본 국채에 투자하고 있다. 해외 증시 투자 비중은 9%, 해외 채권 투자는 1.5%에 불과하다. GPIF는 2004년 이후 투자 패턴을 변화시키지 않은 보수적 기관 투자자로 유명하지만 일본은행의 양적완화에 투자 기조를 바꿨다.
이에 대해 22일자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일본 생보사들이 해외로 투자 포트폴리오를 수정할 것이라는 기대감만으로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국채 수익률이 최근 기록적인 최저 수준을 나타냈다”며 “일본자금의 대방출은 일본은행이 실시한 대대적 양적완화의 새로운 목표”라고 지적했다.
▶와타나베 부인의 귀환=일본의 연금 소득자 요시다 준코(72) 씨는 최근 자산 포트폴리오를 다시 짰다. 일본 국채와 엔화에 대한 매력이 떨어지면서 신흥시장인 터키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뮤추얼 펀드에 투자했다.
대형 기관투자자 못지않게 일본 주부 투자자들의 손길도 바빠졌다. 일본은행의 양적완화로 엔화 가치가 떨어짐에 따라 차입 통화로서의 엔화 매력이 상승해 싼 엔화를 외화로 바꿔 해외 고수익 자산에 투자하는 ‘엔 캐리 트레이드’가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금융전문지 가트먼레터의 데니스 가트먼 편집인은 지난 10일 미국 경제방송 CNBC에 나와 “와타나베 부인들이 미국 주식과 유럽 주식, 캐나다 주식, 금, 원자재 등 갈 수 있는 모든 곳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돈이 일본을 탈출하고 있다”면서 엔화가 미국 달러 및 유로, 호주 달러, 뉴질랜드 달러, 러시아 루블, 이스라엘 셰켈 등과 비교해 모두 가치가 하락하고 있음을 상기시켰다.
‘채권왕’ 빌 그로스도 지난 9일 자신이 공동 최고투자책임자(CIO)로 있는 세계 최대 채권투자회사 핌코의 트위터에 “엔 캐리 트레이드가 군림한다”는 트윗을 남겼다. 그는 “100엔이 엔/달러 환율의 일시적 상한”이라면서 “앞으로 엔화 가치가 더 하락하면 위험자산이 지지를 받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천예선 기자/cheo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