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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 - 전창협> 중산층을 두텁게?, 두렵게!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중산층 비율이 25%라고 얘기하지만 집을 사느라 빌린 돈을 갚고 있는 것까지 포함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실제로 중산층 중 적자가구는 55%나 된다는 충격적인 결론을 내리고 있다.




괜한 얘기였다. MB정부의 슬로건이었던 ‘서민을 따뜻하게, 중산층을 두텁게’란 말을 되새겨보면 그렇다는 얘기다. 지니계수니 하는 숫자를 들먹일 필요도 없이, 그냥 주위를 돌아보면 안다. 중산층이 두터워지기는커녕, 오히려 홀쭉해졌다. 서민이 따뜻해졌는지는 MB 정부 온실에서 일한 사람들이 생각해 보길 바란다.

어떤 구조든 중간이 두터워야 안정감이 생기고 이상적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중산층은 우리 사회의 핵심이고 정치의 균형추다.

한국갤럽이 며칠 전 발표한 ‘한국인의 경제체감지수’조사 중 주관적 생활수준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도 다르지 않다. 질문은 ‘우리 국민들의 생활수준을 상, 중상, 중, 중하, 하의 다섯 단계로 나눈다면 귀댁의 생활수준은 어디에 속한다고 생각하십니까?’였다. 지난해 3월에 견줘 1년 동안 변화를 보면 중층이란 답은 41%에서 37%로 줄었다. 반면 중하층이란 답은 28%에서 32%로, 하층이란 답은 19%에서 21%로 각각 늘었다. 중산층은 줄고 하층은 늘면서 중산층이 중하층이나 하층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경제를 ‘서서히 뜨거워지고 있는 물속의 개구리’로 경고한 맥킨지의 보고서 역시 ‘한국의 멈춰버린 기적’의 배후로 중산층을 꼽았다. 한국이 안고 있는 여러 문제는 중산층의 재무 스트레스 증가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맥킨지는 한국 중산층 가구가 지난 20년간 75%에서 67%로 줄었고, 재무위기에 고전하는 가구 비중이 늘었다고 분석했다. 특히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중산층 비율이 25%라고 얘기하지만 집을 사느라 빌린 돈을 갚고 있는 것까지 포함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실제로 중산층 중 적자가구는 55%나 된다는 충격적인 결론을 내리고 있다. 집뿐 아니라 자녀들을 명문대학에 입학시키기 위해 사교육비를 엄청나게 쓰면서 적자가 늘고 있다. 비싼 집값과 사교육비의 막대한 지출 때문에 생긴 중산층의 재무적 스트레스가 불러온 가장 심각한 문제는 출산율 급락이란 진단까지 하고 있다. 집 살 돈과 자녀 교육비 마련을 위해 한국의 젊은이들은 결혼을 미루고 있고, 스스로 자녀 수를 제한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몇 가지 되새겨 볼 만한 수치와 맥킨지라는 브랜드 값을 빼면 새삼스런 얘기도 아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한국 중산층의 일상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세계적인 컨설팅 업체가 15년 만에 내놓은 한국보고서에 중산층의 재무 스트레스를 한국경제 위기가 연결시킨 것은 의미심장하다.

지난해 월스트리트에서 수입(?)된 ‘1% vs 99%’ 슬로건이 한국사회에서도 먹힌 적이 있다. ‘1 대 99’는 중산층이 사라진 세상이다. 슬로건으로는 모르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선 불가능한 구조다. 1%의 극상층과 나머지로 이뤄진 사회에선 99%의 분노가 결국은 세상을 바꾸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은유적이라 해도 ‘1 대 99’라는 구호가 먹힌다는 것은 중산층의 삶이 두렵다는 방증이다.

알듯 모를 듯한 창조경제든 지킬 듯 말듯 한 경제민주화든, 박근혜정부의 경제기획이 무엇이든 중산층의 복원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물은 뜨겁게 끓어오르고 있는데 개구리는 모르고 있다. 개구리가 죽지 않기 위해선 물이 뜨거워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jljj@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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