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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 - 김화균> 투자확대 ‘교통정리’ 가 먼저다
불확실성은 기업경영에 있어서 상수다. 현재 한국 대기업은 꼬리물기 탓에 꽉 막힌 교차로에 서 있는 자동차와 비슷하다. 질책하기전에 거리로 나와 교통정리부터 해야 할 상황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5일 청와대 수석 비서관 회의에서 던진 발언이 재계에 파장을 낳고 있다. 박 대통령은 “상장 기업의 현금과 현금성 자산이 52조원에 달한다”면서 “이 중 10%만 투자해도 추가경정예산의 세출 확대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투자 확대를 끌어내기 위한 적극적인 지원책 마련도 주문했다.

재계의 속내는 편치만은 않다. 30대 그룹은 이미 지난 4일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의 간담회에서 ‘투자 확대 서약서’를 제출했다. 올해 149조원을 투자하고, 12만8000명을 고용하겠다는 내용이다. 불과 10여일 만에 나온 대통령 발언은 결국 추가 투자 계획을 내놓으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지 때문이다. 재계 한 인사는 “일견 정부가 추가경정예산을 편성, 경기 부양에서 나서는 만큼 재계도 이에 걸맞은 ‘투자 추경’을 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면서 “성의 표시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털어놨다.

투자는 기업이 살아남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기업 행위다. 투자를 하지 않는 기업은 제 살을 깎아먹다가 도태될 수밖에 없다. 누구보다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기업들이 대통령의 발언에 볼멘소리를 하는 것은 갈수록 커지는 불확실성 탓이다. 한 마디로 ‘투자 안 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어도 못 한다’는 것으로 정리된다.

불확실성은 기업경영에 있어서 상수다. 그러나 갈수록 그 안개가 짙어지는 것이 문제다.

침체된 글로벌 경기는 한 마디로 오리무중이다. 중국발 성장률 쇼크는 그나마 하반기부터는 호전될 것이라는 희망마저 꺾어버릴 태세다. 일본의 엔저 공격은 국내 수출기업을 옥죄고 있다.

내수도 마찬가지. 정부가 16일 19조3000억원(기금 변경 포함) 규모의 추경안을 발표했지만, 실효성 논란이 있다. 부동산 경기가 여전히 침체된 상황에서 굳게 닫힌 소비지갑이 열릴지 여전히 의문부호가 달린다.

투자할 곳도 마땅치 않다. 대규모 투자는 더더욱 그렇다. A 대기업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대규모 국내 투자는 박근혜 정부가 추창하는 창조 경제와 궤를 같이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서 “그러나 여전히 창조 경제는 그 개념정리부터 헷갈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B 대기업 관계자는 “대통령이 세제 지원, 규제 완화 등 파격적인 유인책 마련을 지시했지만 실천 방안이 나오지 않는 한 선뜻 총대를 멜 수는 없다”고 털어놨다.

정치 리스크도 기업을 움츠리게 하고 있다. 국회에서, 정부에서 경제민주화 이슈가 연이어 터져 나오고 있다. 재계는 “너무 밀어붙인다. 이러다가 공장을 해외로 옮기는 업체가 나올 수도 있다”고 경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물론 박 대통령이 “기업투자를 누르는 게 경제 민주화가 아니다”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기업들의 체감도는 낮다.

16일 새벽 5시40분쯤. 출근 길 필자에게 모 대기업 임원이 다급히 전화를 걸어왔다. 사장이 출근하기 전 보스턴 폭발 사건의 전망을 담은 긴급 보고서를 만들기 위해서다. 그는 “보스턴 사건마저 악화되면 투자는커녕 허리띠를 더 졸라매야 할 판”이라고 호소했다. 현재 한국 대기업은 꼬리물기 탓에 꽉 막힌 교차로에 서 있는 자동차와 비슷하다. “왜 약속 시간에 늦느냐”고 질책하기 전에 거리로 나와 교통정리부터 해야 할 상황이다.


김화균 산업부장 hki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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