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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커버스토리] 각진 핸드백 든 ‘철의 여인’ 등장에 전세계가 긴장했다
노타이에 소매걷어 올린채 등장한 오바마
열정적으로 ‘일하는 젊은대통령’ 이미지 각인
깔끔한 의상 캐머런 ‘보통사람’리더십 어필

인민복 마니아 김정일·아마디네자드 등
혁명투사·체제유지 선전 활용 포석도




로열블루 정장, 진주목걸이, 왼쪽 옷깃에 끼워진 브로치, 그리고 각진 핸드백….

지난 8일(현지시간) 타계한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영국 전 총리의 패션 코드다. 영국 왕실을 대표하는 로열 블루 색상과 여성성을 상징한 진주목걸이, 그리고 강한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가죽 사각 백은 그녀가 정치ㆍ외교무대에 오를 때마다 단골로 등장했다. 특히 검은색 사각 아스프레이 백은 그녀의 강한 공격성을 보여줬다. 대처는 의회에 들어가 이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고는 격하게 각료들을 몰아붙였다. 이 때문에 자기주장을 강하게 내세운다는 의미의 ‘핸드뱅잉 (handbagging)’이라는 신조어까지 탄생했다.

아직 걸음마 단계인 한국의 ‘패션 정치’와 달리 외국의 지도자들은 60ㆍ70년대부터 전략적이고 치밀한 이미지 정치를 구사해 왔다. 최근 세계 지도자들의 패션 트렌드는 ‘노타이’다. 격식과 위엄을 벗고 국민을 위해 팔을 걷어붙여 일하는 역동적 리더십을 보여준다.

▶ ‘일꾼이미지’ 서방 정상들=‘뉴 프레지던트 룩(새 대통령 패션)’의 새 장을 연 사람은 단연 버락 오바마(52) 미국 대통령이다. 그는 지난해 재선 TV 광고 ‘나는 믿는다(I Believe)’에서 양복 재킷을 벗고 노타이 차림으로 셔츠 소매를 걷어 올린 채 등장했다.

검은 피부와 대비되는 흰색 셔츠를 입고 열정적으로 연설하는 오바마는 185㎝의 훤칠한 키에 농구로 다져진 탄탄한 몸매까지 더해져 ‘일하는 젊은 대통령’을 온몸으로 보여줬다.

옥스퍼드 대학출신인 영국의 데이비드 캐머런(47) 총리는 ‘엘리트, 그러나 보통사람’ 이미지를 어필한다. 그의 패션은 절제되고 깔끔하지만 약간은 덜 차려 입은 듯 한 느낌이 포인트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옷에 관심이 없다”고 말했지만 아내 사만다가 영국 럭셔리 문구 브랜드 스마이슨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출신이고, 처제가 영국 보그 부편집장(에밀리 셰필드)인 점을 감안할 때 패션과 거리를 둘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남성 패션잡지가 뽑은 ‘영국에서 가장 옷 잘 입는 남성 2위’에 오르기도 했다. 


패션의 나라 프랑스의 프랑수아 올랑드(59) 대통령은 대선을 위해 15㎏을 감량했다. 그는 햄버거를 끊고 고급 슈트 차림에 날렵한 안경을 쓰고 지적인 이미지로 변신했다. 그는 지난해 2월 낸 자서전에서 “스타일이 남자를 완성한다. 스타일은 대통령도 만든다”고 역설했다.

지난해 3선에 성공한 블라드미르 푸틴(61) 러시아 대통령은 드물게 강한 남성미를 과시하는 지도자다. 근육질의 웃통을 벗고 낚시하는 모습과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를 타는 모습은 전파를 타기도 했다. 하지만 정장을 입을 때는 150수 이상의 수공예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스테파노리치’를 고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인민복’ 마니아 사회주의 지도자들=사회주의 국가 지도자들은 대부분 밋밋한 인민복을 즐겨 입는다. 패션을 통해 인민만을 생각하는 ‘혁명의 투사’라는 이미지를 선전하기 위해서다. 이런 이유에서 사회주의 지도자들은 서방 패션의 상징인 넥타이를 잘 매지 않는다.

북한의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은 어두운 색깔의 인민복과 둥글게 부풀린 헤어스타일, 레이밴 선글라스, 플랫폼 슈즈가 트레이드 마크였다.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김정일 스타일에 대해 “풍성한 헤어스타일과 12.7㎝의 키높이 구두는 작은 키와 체격을 실제보다 커 보이게 하고, 불룩하게 나온 베이지색 인민복 상의는 방탄조끼를 숨기기에 적합하다”고 평가했다.

마무드 아마디네자드(57) 이란 대통령은 ‘독재자의 비즈니스 캐주얼’의 창시자란 말이 나올 정도로 기능성을 살린 카키색 재킷과 단색 셔츠, 짙은 색 바지를 고수한다.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87)와 라울 카스트로(82) 형제 역시 수십년간 녹색 군복을 즐겨 입었다.

▶ ‘여성성 딜레마’ 여성 지도자들=여성 지도자에게 패션은 약이면서 독이다. 너무 엉성하면 센스 없다는 소리를 듣고, 너무 요란하면 사치스럽다는 평가를 피할 수 없다. 이 양극단에 서있는 정상이 바로 앙겔라 메르켈(59) 독일 총리와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60) 아르헨티나 대통령이다.

과학자 출신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늘 3~5버튼 재킷과 바지를 입는다. 재킷의 모양은 비슷하지만 색상은 90가지가 넘는다. 온화한 메시지를 주고 싶을 땐 녹색, 지도력을 강조할 땐 검은색, 경축 행사 땐 빨간색 재킷을 주로 입는다. 귀걸이, 브로치, 팔찌 등 다른 주얼리는 거의 하지 않는다. 이런 메르켈 총재도 파격적인 드레스를 선보여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적이 있다. 노르웨이 국립오페라하우스 개관식서 가슴이 깊게 파인 드레스를 입고 등장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반면에 아르헨티나의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남미의 재클린’이라고 불리는 패셔니스타다. 무용수 출신으로 짙은 화장, 미용실에서 금방 나온 듯 한 긴 헤어스타일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금과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롤렉스시계와 명품 하이힐을 좋아해 ‘사치 대통령’으로 공분을 사기도 했다. 잉락 친나왓(46) 태국 총리는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패션 감각을 자랑하는 여성 수장이다. 지난해 3월 서울에서 열린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석한 친나왓은 오렌지색 스카프, 하늘색 리본 블라우스로 여성적인 매력을 과시했다. 

천예선 기자/che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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