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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 - 정덕상> 김정은, 차우셰스쿠와 덩샤오핑 사이에서
김정은은 소비에트연방 해체를 불러온 고르바초프도 아니고, 김일성을 흠모하다가 군부에 의해 160발의 총알을 맞고 비참한 최후를 마친 차우셰스쿠도 아닌, 덩샤오핑이 되기를 원할지도 모른다. 물론 김정은은 데드라인을 넘지 말아야 하지만.




오늘로 꼭 1년 전, 김정은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에 등극해 명실상부한 최고권력자가 됐다. 38살 때 6ㆍ25전쟁을 일으킨 할아버지(김일성), 34살 때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을 저질렀던 아버지(김정일)와는 다른 3세대 지도자에 대한 기대가 절망으로 바뀌는 데는 채 1년도 걸리지 않았다. 그는 대내외적으로 인정받기를 원하면서, 무시당하는 10대처럼 행동하고 있다. 그리고 서방국은 그를 사춘기 청소년을 대하듯 하고 있다. 미국 본토가 그려진 작전지도 앞에 서서 미국을 상대로 핵전쟁선전포고를 하는 김정은을 국제사회는 조롱 섞인 시선으로 보고 있다.

그러면서도 전 세계는 전면전은 아니더라도 우발적인 사건에 의해 휴전선 화약고가 터질까 우려하고 있다. 비록 김정은이 국제사회에서는 조롱거리로 전락했지만, 한국에는 대북 리스크를 증폭시키는 실질적 위험인물이다. 원화가치는 떨어지고 물가는 오르고, 불안한 외국인은 주식을 내다팔고, 국가신용등급 하락도 현실화하고 있다. 핵보유를 통한 체제유지라는 분명한 목적성을 가진 북한의 잇따른 도발은 최소한 오는 7월 27일 정전협정 60돌까지 집요하게 진행될 공산이 크다. 내부체제 결속과 함께, 미국과의 평화협정 체결, 남측의 정책변화를 촉구하기 위해 어떤 불이익도 감수하겠다는 각오다.

위기 때 국론이 분열돼 더 큰 어려움을 겪은 교훈이 있다. 임진왜란 때도 그랬다. 벌써 대북특사 파견, 핵포기 조건을 내세운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수정 요구가 야당은 물론 학계에서도 제법 커지고 있다. 공짜 평화가 없으니까 햇볕정책으로 회귀해야 한다는 논리도 있고, MB 정권에 몸담았던 인사들은 “숨이 턱밑까지 차오른 북한을 더 압박해야 한다”는 조언도 있다. 너무 유화적으로 해도, 너무 강하게 나가도 북한 체제를 변화시키지 못했으니 다 틀렸다는 양비론도 있다.

현실적으로 대북특사는 어렵다. 북한이 수용할지도 불분명하고, 과거의 사례를 보면 엄청난 대가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특사파견 자체가 ‘돈으로 사는 가짜 평화’라는 논란거리다. 또 제안 한 번 해보지 못한 대북정책을 바꾸기도 힘든 노릇이다. 위기상황일수록 국론을 모으고, 정부와 국민 모두 차분하게 대응하는 전략적 인내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렇다고 북한을 얕잡아보고 무시하다가 대화의 타이밍을 놓치고, 노선분열로 방향성을 잃은 이명박 정부의 실패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외교적인 모멘텀을 만들려는 끊임없는 노력과 함께, 미국과 중국 등 주변국을 포함해서 대북 외교적 시간표를 만드는 시도가 필요하다. 마침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12일부터 이틀간 한국을 방문한다. 북한은 미국과의 직접 대화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창조경제만 있는 게 아니다. 창조안보가 나와야 이전 정부와 다른 해법을 찾을 수 있다.

김정은은 서방국의 영웅이지만 소비에트연방 해체를 불러온 고르바초프도 아니고, 김일성을 흠모하다가 군부에 의해 160발의 총알을 맞고 비참한 최후를 마친 차우셰스쿠도 아닌, 덩샤오핑(鄧小平)이 되기를 원할지도 모른다. 물론 김정은은 데드라인을 넘지 말아야 하지만. 

jpur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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