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 미국과 일본에서 무제한 풀린 돈이 미국 정크본드(투기 채권)와 아시아 회사채 시장에 몰리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아시아 회사채 시장의 열기가 ‘시장 붕괴의 초기 조짐’이란 경고가 나오는 등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와 관련,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는 선진국의 초 완화 기조가 ‘시장을 왜곡시키고 있다’는 비판에 반박하는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9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 투자자들이 지난해까지만 해도 투자를 꺼렸던 중국 부동산 채권 투자를 최근 재개하고 있다.
펀드평가사 EPFR(Emerging Portfolio Fund Research)의 글로벌 집계에 따르면, 미국 투자자들은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에서만 올해 들어 1억6153만 달러어치 채권을 매입했다. 지난해에는 1억5714만 달러를 매입했다.
WSJ는 이런 현상은 미국 펀드 매니저들의 180도 방향 전환을 의미한다고 전했다. 그동안 미국 펀드 매니저들은 중국 회사의 회계 사기, 국가 주석 교체, 아시아 경기 침체 등의 이유로 아시아 관련 자산을 매도해왔다.
그러나 이제 피델리티 월드와이드 인베스트먼트 등 세계적인 규모의 펀드들이 대거 아시아로 회귀하고 있는 것이다.
아시아 회사들이 초저금리로 돈을 빌릴 미국 투자자들의 투자 열망을 한껏 이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WSJ는 설명했다.
중앙은행이 경제 성장을 위해 위험 부담이 낮은 채권 수익률을 낮추려 하기 때문에 글로벌 투자자들이 위험 부담은 높으나 고수익을 보장하는 채권 쪽으로 쏠린다는 분석이다.
대표적인 예로, 중국 부동산 개발업체인 카이사 그룹 홀딩스가 꼽힌다. 이 회사는 지난 3월초 뉴욕, 보스턴, 마이애미에서 잇달아 열린 투자자 모임에서 5억5000만 달러에 달하는 채권에 대해 스탠다드앤푸어스(S&P)로부터 투자 ‘부적격’ 판정을 받았지만, 100억 달러를 투자받았다. 채권의 25%는 미국 계좌에서 샀다.
중국 채권에만 국한되는 것도 아니다. 인도 휴대폰 회사인 바티에어텔은 S&P로부터 ‘투기’ 등급으로 분류됐지만, 지난 달 10억 달러 상당의 10년 만기 채권을 팔기 시작해 총 95억 달러를 팔았다. 이 중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미국인이었다.
마카오 카지노 운영업체인 멜코 크라운 엔터테인먼트 또한 투자 부적격으로 판정됐으나 지난 1월 10억 달러에 달하는 8년 만기 채권을 팔아 판매액의 3분의 2를 미국 투자자들에게 팔았다.
WSJ는 미국 투자자들이 아시아 시장에 다시 돌아가는 것은 최근 큰 손실을 보긴 했지만, 고수익에 대한 기대 또한 높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파이낸셜 타임스(FT)도 9일(현지시간) 자에서 글로벌 자금이 미국 정크본드 시장으로 되돌아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과 유로존 성장에 대한 새로운 우려와 엔저 지속이 달러 자산 수요와 맞물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뱅크 오브 아메리카 메릴 린치의 미국 고수익률 시장 책임자 스테판 재거는 FT에 미국 정크본드 발행의 69%가 차환 용도라고 지적했다.
그는 정크본드에 수요가 몰리면서 수익률도 기록적으로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면서 한 예로 무디스에 의해 ‘투자 등급’보다 두 단계 낮은 Ba2를 부여받은 CNH 캐피털이 5년 만기 채권을 3.625% 금리로 발행, 6억 달러를 차입했음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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