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 존 케인스가 언급한 것으로, 경제가 인간의 합리적ㆍ이성적 판단에 의해서만 돌아간다고 보지 않고 인간의 비경제적인 본성도 경제를 움직이는 하나의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개념이다.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기사에서 일본 기업들이 오랫동안 상실해온 ‘야성적 충동’을 되살릴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日 대기업 회사채 발행 러시설비투자 위한 실탄확보 분석
경기 선순환 회복 기대감 고조
고수익 노리고 日자금 유럽으로
유로존 각국 조달비용 덜어줘
일본 경제가 ‘잃어버린 20년’에서 깨어나고 있다. 일본은행의 대대적 양적 완화가 주가 급등과 엔저를 끌어내더니 이번엔 일본 기업가들의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을 깨우고 있다. 아베노믹스(아베 정권의 경기 부양 정책)의 약발이 일본 대기업들의 회사채 발행으로 이어지면서 경기 선순환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일본은행의 파격 행보는 대륙을 횡단해 유럽까지 달궜다. 고수익을 노린 일본 자금이 유럽으로 대거 유입되면서 유로존 각국의 조달비용을 덜어줬다.
▶아베노믹스 경기 선순환 이끄나=무차별적인 ‘엔화 살포’에 일본 기업들의 설비투자가 기지개를 켜고 있다. 9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 2위 자동차업체 닛산과 최대 통신회사 NTT가 이달 중 각각 1000억엔(약 1조1500억원) 규모의 회사채 발행에 나선다. 오사카권 근기일본철도(近畿日本鐵道)와 제분 대기업인 일본제분(日本製粉)도 각각 400억엔, 100억엔씩 사채 발행에 동참한다.
일본 기업의 회사채 발행 러시는 설비투자를 위한 실탄 확보 차원인 것으로 풀이된다. 일본은행의 대대적 양적 완화 이후 장기 금리가 하락하면서 기업들이 저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지난 4일 일본은행의 금융 완화책이 발표된 이후 일본 채권 수익률은 국채와 사채를 막론하고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10년물 일본 국채 수익률은 지난 8일 장중 한때 0.315%까지 떨어져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신용 등급이 비교적 좋은 더블 A 등급 회사채(10년물) 이율도 0.7%로 역대 최저 수준을 보였다.
신문은 “일본은행의 양적 완화로 자금 조달 환경이 전례 없이 호전되고 있다”며 “장기 금리 인하가 기업 재무 전략에 호재로 작용, 기업들이 설비투자를 목표로 자금 확보에 나서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의 최대 편의점인 세븐일레븐을 운영하는 세븐&아이홀딩스는 내년 계획 중인 3400억엔 규모의 설비투자를 위해 사채 발행을 추진하고 있다. 회사 측은 “보유 자금에 여유는 있지만, 유리한 조건으로 안정적인 자금을 조달해 재무 면에서 여력을 높일 생각”이라고 말했다.
신문은 “엔저 등으로 실적 개선을 앞둔 기업들이 투자 적기를 모색해왔다”며 “조달자금은 일단 차환으로 이어지겠지만 이것이 설비투자와 결합한다면 경제 선순환을 일으킬 수 있다”고 전망했다.
▶유럽 전 대륙 ‘일본돈’ 홍수=일본의 국채 수익률이 제로 수준으로 떨어지자 일본 유동성이 유럽으로 물꼬를 틀기 시작했다.
지난 8일 유럽 국채 시장에는 일본 투자자들의 ‘사자’가 몰리면서 국채 가격 상승(수익률 하락) 추세가 지속됐다.
프랑스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8일 1.71%로 하락,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10년 만기 독일 국채 수익률도 지난해 7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고, 영국 국채도 지난해 8월 이후 바닥을 찍었다.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핀란드 등의 국채 수익률도 저점에 근접했다.
고수익에 혈안이 된 일본 투자자들은 채무위기국인 이탈리아와 스페인 국채까지 흡수해 충격을 줬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10년물 국채금리는 각각 4.31%, 4.71%를 기록, 11bp(1bp=0.01%), 9bp씩 떨어졌다.
일본 투자자들의 해외 자산 매입은 갈수록 더할 것으로 보인다. JP모간은 올해 일본 투자자들이 해외 자산 매입을 450억유로(585억달러)까지 늘릴 것으로 내다봤다. 밥 드 그루트 BNP파리바의 수석 트레이더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일본을 떠나게 될 일본 국채 시장 유동성은 기념비적인 수준”이라며 “우리는 지금까지 빙산의 일각을 본 것뿐”이라고 말했다.
천예선 기자/cheo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