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쉼표> 백석의 ‘테스’
“가난한 내가/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로 수많은 여심을 흔들어 놓은 시인 백석은 우리시대 ‘시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으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최근 백석 연구가 활발한 가운데 그동안 실체를 찾지 못했던 작품의 발굴작업도 속속 성과를 드러내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우리에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백석의 번역 작품이다.

지난해 백석 탄생 100주년을 맞아 고려대 최동호 교수가 1949년 출간된 숄로호프의 ‘고요한 돈’을 북경도서관에서 발굴한 데 이어 최근 숙제로 남아있던 백석의 토머스 하디의 ‘테스’ 번역본을 찾아냈다. 최 교수는 지난해 여름 출간기록만 갖고 우선 국내 고서점을 수소문했다. 달리 성과가 없자 대학 도서관을 샅샅이 훑어나갔다. 그러던 중 서강대 로욜라도서관에 ‘테스’가 소장된 사실을 알아냈다. 최 교수는 그때 “밤잠을 설치고 새벽이 오기를 초조하게 기다렸다”며 감회를 털어놨다.


서강대본은 첫 표지는 낙장이지만 출판사 조광사와 백석의 이름, 1940년(소화15년) 9월 30일 발행 등이 확실하게 표기돼 있다. 백석은 1940년 전후 만주국 신경(현재 장춘)에서 세관원을 하고 있었다. 백석의 ‘테쓰’는 낯선 외래어 표기와 토속어 때문에 술술 읽히지는 않지만 짧고 생생한 구어체와 생동감 넘치는 의성어와 의태어, 풍성한 방언은 그의 시와 마찬가지로 우리말의 보고처럼 느껴진다. ‘돌설렝이길(자갈길)’‘홍글홍글 걸어서’같은 표현은 어떤 번역보다 생생하다.

1959년 숙청돼 북한 삼수 관평리 벽촌에서 30여년간 양치기로 생활하다 생을 마감한 백석은 ‘테스’에서 비극적 운명의 예감을 만났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연재 기사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