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지펀드 고객돈 수백억 사취
화장품 시제품비 빼돌리기도
버진 아일랜드 같은 조세 피난처가 복잡한 금융 사기 행각의 ‘성역(?)’으로 악용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사기범들에게 조세 피난처는 마치 천국과도 같았다.
뉴욕 헤지펀드 매니저는 조세 피난처 계좌를 통해 한 거액자산가 고객의 재산 중 1200만달러(한화 약 135억7800만원)를 은밀히 사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화장품 무료 시제품 비용을 몰래 청구하는 방식으로 수백명의 고객을 우롱한 경우도 있었다.
한 자산운용 매니저는 23%의 수익률을 보장해준다며 3350만달러(약 379억원)의 투자금을 모은 뒤 종적을 감췄다.
모두 조세 피난처를 도피처로 활용한 사기 사례다.
7일(현지시간) 미 일간지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워싱턴DC에 본부를 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입수한 250여만건의 조세 피난처 관련 정보를 워싱턴포스트가 공동 분석한 결과 이 같은 사실이 밝혀졌다.
ICIJ에 따르면 조세 피난처는 사기범들에게 성지와도 같다. 당국의 조사나 투자자의 관심을 돌리는 데 조세 피난처만한 성역이 따로 없다는 것이다.
입수 명단에 등재된 4000여명의 미국 시민 중 적어도 30명 이상이 사기나 자금 세탁 또는 비슷한 금융 사기 혐의로 소송 중인 것으로 드러났다.
30명 중에는 지난 2011년 미국 역사상 최대 내부거래 사건으로 기소된 수천억원대 자산가이자 헤지펀드 매니저인 라즈 라자라트남, 증권 사기로 기소된 1980년대 기업 사냥꾼 폴 빌제리언 등 유명 인사도 다수 포함돼 있다.
사기사건 전문가들은 복잡한 금융 사기에 조세 피난처 활용은 필수적으로 활용된다고 보고 있다.
70억달러(약 7조9200억원) 사기사건을 주도한 앨런 스탠포드, 미 역사상 최대 금융 피라미드 사기를 주도한 버나드 마도프 등도 모두 조세 피난처를 자금 은닉처로 활용했다.
보도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신고만 하면 조세 피난처를 합법적으로 사용할 수 있으나 최근 미신고 송금 사례가 크게 늘어났다. 최근 내부 고발자가 미 당국에 수천 건의 미신고 송금 사례를 제보하면서 이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고, 결국 자신 신고로 이어져 미 당국은 수천억원의 세금을 더 거둬들인 바 있다.
김수한 기자/sooha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