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영화 평론계의 ‘큰 별’이 졌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영화 평론가 중 하나인 로저 이버트가 4일(현지시간) 암투병 중 타계했다. 향년 70세.
50년 가까이 신문과 방송을 종횡무진하며 전세계 영화팬을 사로잡은 이버트는 마지막 순간까지 영화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다.
이버트는 사망하기 하루 전날인 지난 3일 새벽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암 재발로 당분간 활동을 자제하겠지만 엄선된 작품에 대해서는 평론을 계속 내놓겠다”고 밝혔다. 이어 팬들에게 “지금까지 긴 여정에 함께 해준 여러분께 다시 한 번 감사한다. 영화를 통해 만나자”는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일리노이대학과 시카고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1967년부터 46년 간 시카고 선타임스에서 영화담당기자와 영화평론가로 일하며 대중적 명성을 쌓았다.
1975년에는 영화 비평으로는 처음으로 평론 부문 퓰리처상을 받았고, 2005년에는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이름을 올렸다. 그가 저술한 책은 15편에 이른다.
이버트가 대중적 인기를 얻기 시작한 것은 1975년부터 20여 년간 시카고 트리뷴 기자 진 시스켈(1946~1999)과 함께 진행한 TV 영화비평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부터다.
이버트와 시스켈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거나 내리는 제스처로 영화를 평가하면서 최고의 영화평에 ‘투 섬스 업’(Two Thumbs Up)이란 말이 붙기도 했다.
그러나 시스켈이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난 지 3년 만인 2002년 이버트도 암선고를 받고 수술과 재활을 반복했다.
이버트는 암치료를 위해 2006년 턱 선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고 먹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상황에서도 영화에 대한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2010년 그는 자신의 얼굴을 당당히 공개하면 평론 활동을 재개했다.
이버트는 자신의 블로그와 트위터를 통해 영화평을 발표하고 팬들과 소통했다. 지난해 그가 발표한 영화평론은 300여 편에 이르고 그의 트위터 팔로워는 82만7000명이나 된다.
이버트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자 전세계에 애도의 물결이 확산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버트는 영화 그 자체였다”며 “그는 좋아하지 않는 영화에 대해 진솔했다. 좋아하는 영화를 만났을 경우에는 그 영화가 지닌 독특한 파워를 끄집어내 우리를 마법의 세계로 인도했다”고 회고했다.
이버트는 지난 1992년 흑인 여성 채즈 해멀스미스와 결혼해 입양한 두 자녀와 함께 네 명의 손주를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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