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금지된 사랑은
구한말 기구한 역사에서 왕족의 사랑 역시 자유롭지 못했다. 조선 왕조의 마지막 황태자 이구는 구한말 고종의 셋째 아들 영친왕이 일본에 볼모로 잡혀간 뒤 일본의 왕족 이방자 여사와 정략 결혼해서 낳은 아들이다.그는 소년 시절 일본의 왕족과 귀족들만 다니는 가쿠슈인에서 공부했다. 광복 후 1953년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초청으로 미국 유학을 떠나 MIT공과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한다.
그는 졸업 후 미국 뉴욕 아이엠페이(IMPEI) 건축사무소에 입사해 건축가로 활동하던 중 1959년 같은 회사에 근무하던 8살 연상의 우크라이나계 미국인 줄리아 멀록 여사를 만나 결혼했다.
1963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초청으로 영친왕, 이방자 여사, 덕혜 옹주와 함께 귀국해 창덕궁 낙선재에서 생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구의 한국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종친들은 서양인인 데다 왕손을 낳지 못하는 멀록과의 결별을 종용했다.
결국 1977년 멀록과 별거에 들어간 이구는 일본으로 다시 건너갔다. 종친회는 1982년 두 사람을 강제이혼시켰다.
멀록은 플라자호텔에서 공예점을 운영하며 장애인 복지 등 불우이웃돕기 사업을 벌이다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1995년 친정인 하와이로 돌아갔다.
이후 이구는 2005년 7월 16일 장기 투숙 중이던 도쿄 아카사카 프린스호텔 객실에서 숨을 거뒀다. 이구의 영결식이 있던 날, 멀록은 서울 종묘 근처에서 운구행렬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면서 사랑했던 이와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권도경 기자/ko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