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적 더글러스 공격에도 유머로 재치있게 대응
-남북전쟁중엔 “나는 울면 안되기 때문에 웃는다”
유머정치의 달인 처칠
-용모 비꼬자 “갓태어난 아기들 다 나처럼 생겨”
-의회 지각엔 “예쁜 마누라랑 살면 늦잠자”
죽음 앞에서도 능청스러운 레이건
-생사기로서 “영화배우였다면 잘 피했을텐데”
-지지율 떨어지자 “다시 한번 총 맞으면 된다”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였던 밥 돌 전 상원의원은 2000년 자신의 저서에서 역대 미국 대통령 순위를 매겼다. 기준은 정치력도, 경제성과도 아니었다. 순위를 가른 것은 바로 유머감각.
1위에는 ‘가장 위대하고 가장 재미있는 대통령’이라는 찬사와 함께 에이브러햄 링컨이 올랐다. 2위는 ‘배우로서 결코 타이밍이 어긋나는 법이 없었던’ 로널드 레이건, 3위는 ‘자신과 미국이 공황과 세계대전을 견뎌내는 데 도움이 된 위트를 구사한’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차지했다. 밥 돌은 대통령의 리더십에서 유머감각을 정치력에 버금가는 중요한 요소로 꼽았다.
정적마저 웃게 만드는 유머는 정치지도자에게 또 하나의 통치력이다. 이들은 정적의 공격을 유머로 재치있게 받아쳐 분위기를 한순간에 바꾸기도 한다. 살벌한 정치세계에서 해학과 은유로 위기를 부드럽게 넘기는 유머는 국민과 소통하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생사를 오가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유머의 힘은 정치지도자의 역량만큼 빛을 발한다. 미국 정계에서는 출세하려면 유머에 능해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가장 위대하고 재미있는 링컨=가장 위대한 미국 대통령으로 추앙받는 링컨은 유머감각이 뛰어난 대통령이기도 하다. 그는 적기에 재치있는 유머를 구사했고, 스스로를 웃음거리로 만드는 여유도 보였다.
링컨은 정적도 유머로 공격했다.
링컨이 미국 상원의원 후보자리를 두고 스트븐 더글러스와 대결할 때다. 더글라스가 링컨을 향해 ‘두 얼굴을 가진 이중인격자’라고 공격했다. 링컨은 침착하게 맞받아쳤다. “여러분께 판단을 맡깁니다. 만일 제게 또 다른 얼굴이 있다면 이 얼굴을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청중은 폭소했고, 상대방은 초토화했다.
상원의원 합동 선거유세에서 더글러스가 ‘링컨이 법을 어기며 서점에서 술을 팔았다’며 자격 시비를 논하자 “본인이 그 상점을 경영하던 당시 더글러스 후보는 내 가게에서 가장 술을 많이 사마신 최고의 고객이었다. 더 확실한 사실은 나는 이미 술 파는 계산대를 떠난 지가 오래됐지만 그는 여전히 그 상점의 충실한 고객으로 남아 있다”고 답했다.
링컨은 이 한 마디로 모든 상황을 반전시켰다.
그는 남북전쟁 와중에도 “나는 울면 안 되기 때문에 웃는다”고 했다.
링컨은 유머의 힘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대통령이었다.
▶입심 하나는 천하무적, 처칠=윈스턴 처칠은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리더십이 입심에서 나왔다고 할 정도로 연설과 유머의 달인이다.
외모도 160㎝의 뚱뚱한 단신에 대머리였지만, 입심으로 그를 당할 자는 없었다.
한때 의원들이 처칠의 용모를 비꼬자 그는 재치있게 응수했다. “갓 태어난 아기들은 전부 나처럼 생겼답니다.”
총리가 된 처칠이 의회에 지각했을 때다. 의원들이 비난하자 그는 여유있는 유머로 받아넘겼다. “여러분도 나처럼 예쁜 마누라를 데리고 산다면 아침에 결코 일찍 일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의회에서는 폭소가 터졌다.
처칠이 대기업 국유화를 놓고 의원들과 치열한 설전을 벌이던 일화도 유명하다. 청문회가 정회되자 처칠은 화장실에 들렀다. 국유화를 주장하던 노동당 당수 옆자리가 비어 있었지만 그는 계속 기다렸다. 이를 본 노동당 당수가 이유를 캐물었고, 처칠이 답했다. “당신은 큰 것만 보면 국유화하려고 하잖소. 혹시 내 것을 보고 국유화하자고 달려들면 큰일 아닙니까.”
▶생사고비에 빛 발한 유머, 레이건=1984년 레이건 대통령이 재선에 출마했을 때 나이가 73세였다. 56세라는 젊은 나이의 상대 후보 먼데일 전 부통령은 TV 토론에서 레이건의 고령을 트집잡았다.
그러자 레이건은 “나는 후보의 나이를 문제 삼고 싶지 않다. 이에 먼데일 후보의 ‘젊음’과 ‘무경험’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겠다”는 유머로 역공했다.
정책 대신 대통령의 나이를 문제삼은 먼데일은 자기 출신 주를 제외한 나머지 49개 주에서 완패했다.
레이건은 생사의 기로에서도 능청스러운 유머로 국민을 안심시키는 여유를 보였다.
1981년 레이건은 정신이상자의 총에 맞아 병원에 실려가면서 “예전처럼 영화배우였다면 잘 피할 수 있었을텐테”라며 농담을 했다. 수술실에 들어온 의사들에게는 “당신들이 전부 공화당원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면서 성공적인 수술을 부탁했다.
이 몇 마디는 그의 지지율을 83%까지 끌어올렸다. 하지만 다음해 지지율이 30%까지 내려가자 걱정하는 참모진에게 “다시 한 번 총 맞으면 된다”며 위로했다.
권도경 기자/ko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