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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읽기 - 정재욱> 뻔뻔한게 매력인 배우 김혜수
표절 시비에 휘말린 인사들이 학위를 반납했다는 소리를 아직 들어본 적이 없다. 남의 것을 훔친 학위에 왜 그리 집착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훌쩍 학위를 던져버린 배우 김혜수의 매력이 더 돋보이는 이유다.



배우 김혜수의 매력 중 하나는 어설픈 뻔뻔함이다. 사기 도박판을 벌이다 단속에 걸려 쇠고랑을 차면서도 “왜 이래, 나 이대 나온 여자야”(영화 ‘타짜’)라며 고개를 빳빳이 드는 어색한 거만스러움이 그 압권이다. 젊다 못해 어린 대학생과 아찔한 불륜행각을 벌이다 들통나 맨발로 줄행랑을 치는 와중에 남편을 향해 “네가 해준 게 뭐야”(영화 ‘바람피기 좋은 날’)라며 악다구니 쓰는 모습도 그렇다.

분명 도덕적으로 손가락질 받을 상황인데 왠지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의 일탈에는 뭔가 2% 부족한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게 관객들에게는 자연스러운 편안함으로 다가온다. 어설픈 뻔뻔함의 매력인 셈이다. 게다가 원초적 섹시함까지 곁들이니 그 매력은 가히 치명적이다. 내로라는 후배들이 차고 넘치는 영화판에서도 그녀만의 아우라가 여전히 살아있는 것은 이런 까닭일 게다.

그런 그녀가 이번에 고약한 입장에 처했다. 십 수년 전에 쓴 석사학위 논문이 표절 시비에 휘말린 것이다. 물론 그녀만이 아니다. 현직 대통령실장부터 각료급 고위 공직자, 대형교회 목사, 인기 강연전문가, 심지어 국내 최고 대학 교수까지 줄줄이 엮여 온 나라가 시끄럽다. 그런 판국이니 박사도 아닌 석사 논문 표절쯤이야 ‘사려 깊지 못했다’며 적당히 넘어간들 시비 걸 사람도 없을 것이다. 또 다들 그렇게 어물쩍하며 광풍이 잦아들기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위기 탈출 방식은 좀 달랐다. 어찌 할 말이 없고 아쉬움이 없을까만 순순히 표절을 인정하고 학위를 반납해버린 것이다. 그 행간에는 ‘이깟 학위가 뭐 대단하다고, 너나 가져라…’는 뉘앙스가 풍긴다. 그녀스러운 어설픈 뻔뻔함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그녀가 ‘석사’라는 사실을 이번 소동으로 알게 된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석사학위는 영화배우 김혜수의 본질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훌쩍 던져버렸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종사하는 분야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시간을 쪼개 학위 과정을 밟는 것은 권장할 일이다. 실제 상당한 성과를 이룬 주경야독파도 많다. 하지만 적당히 이름만 걸쳐 놓고 짜깁기 논문으로 받은 박사라면 사정이 다르다. 표절은 남의 지식과 연구 결과를 도용한 것이며 명백한 범죄행위다. 학위를 취득한 게 아니라 훔친 것이다.

그런데도 표절 도마에 오른 인사들 가운데 학위를 반납했다는 소리는 아직 듣지 못했다. 갖은 수모를 당하고도 학위를 움켜지고 있는 모습은 뻔뻔하다 못해 비굴해 보인다. 그렇게 해서라도 지켜야 할 만큼 그 학위가 가치가 있는지 묻고 싶다.

더 한심한 것은 복사물 수준의 학위 논문을 버젓이 통과시켜준 대학들이다. 그러고도 한 마디 사과나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흉내조차 내지 않고 있다. 정말 뻔뻔하다. 따지고 보면 표절 논란은 극히 일부 지도층 인사에 국한될 뿐이다. 공산품 찍어내듯 배출된 엉터리 박사들이 얼마나 많을지 대강 짐작이 간다. 그러니 대학이 학위 장사를 한다는 비난이 그치지 않는 것이다. 그게 우리 대학의 수준이라면 더 할 말이 없다. 당당하게 뻔뻔한 배우 김혜수의 매력이 오늘따라 더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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