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현경 기자] 현대상선의 우선주 발행 확대 등 증자 방안을 둘러싼 현대그룹(현대상선 최대 주주)과 현대중공업(현대상선 2대 주주)의 신경전이 현대그룹의 승리로 끝났다. 이번 사안은 현대그룹을 이끌고 있는 고(故) 정몽헌 회장의 부인 현정은 회장과 현대중공업의 최대주주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 간의 현대가(家) 경영권 분쟁으로도 풀이된다.
양측은 2011년에도 비슷한 사안으로 주총에서 맞붙어 현대중공업이 승리한 바 있다. 현대그룹으로선 2년 만에 패배를 설욕한 셈이지만 양측은 현대상선 경영권 유지를 위한 보유 주식 비율과 원활한 자금 조달 방식 등을 놓고 감정의 앙금이 남아 있어 가문간 타툼의 불씨는 여전한 걸로 분석된다.
▶67 대 33으로 현대그룹 승=22일 열린 제37기 현대상선 주주총회에서 우선주 발행 한도를 확대하는 내용의 정관 변경안이 67.35%의 찬성으로 통과됐다. 정관 변경을 주장한 현대그룹이 반대 입장을 밝힌 현대중공업에 압승을 거둔 것이다.
정관을 변경하기 위해서는 의결권이 있는 주식 중 과반이 의결에 참여하고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이날 주총에는 의결권이 있는 주식 1억5246만주 중 82.77%(1억2619만3381주)가 참석해 의결권을 행사했다. 이 가운데 8499만2549주는 찬성 의사를 밝히고 4120만8302주(32.65%)는 반대 및 기권표를 던졌다.
이로써 우선주 발행 한도는 2000만주에서 6000만주로 늘어나고 신주인수권, 전환사채, 신주인수권부사채 조항도 개정돼 증자를 보다 쉽게 할 수 있게 됐다. 정관 변경으로 현대상선이 확보할 수 있는 자금의 규모는 발행 당시 주가에 따라 결정된다.
이번 주총 결과는 현대상선의 최대 주주인 현대그룹과 2대 주주인 현대중공업의 경영권 싸움에서 주주들이 현대그룹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풀이된다.
현대상선 지분은 현대엘리베이터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등이 27.7% 가량을 갖고 있고 우호 지분까지 합하면 47% 가량이 된다. 현대중공업은 계열사인 현대삼호중공업과 함께 22% 가량을 갖고 있고 범(汎) 현대가인 현대건설이 7.2%, KCC가 2.4%, 현대산업개발이 1.3%를 보유하고 있다.
이날 현대중공업은 이사 보수한도 승인건에도 반대하며 표결을 요구했다. 이 안건은 65.62% 찬성, 34.38% 반대로 가결됐다.
▶잊을 만하면 불거지는 현대家 경영권 분쟁, 왜?=현대상선이 현대중공업과 마찰을 무릅쓰고 정관을 개정하려고 한 것은 자금 조달이 시급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현대상선은 해운업 불황의 파고를 넘지 못하고 지난해 1조351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부채 규모도 7조292억원에 달한다. 현대상선이 이날 주총에서 총 주식 발행 한도(3억주) 중 우선주 발행 한도의 비율을 상법상 한계(25%)에 근접한 20%까지 늘리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해 이미 유상증자를 실시했고 회사채 발행도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우선주 발행 확대는 새로운 길이었다. 현대상선 관계자는 “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을 하나라도 더 열어둔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대중공업 입장에서는 신주 발행이 늘어나면 지분율이 줄어 경영권이 약해지게 된다. 때문에 “신주인수권 조항이 통과되면 이사회 결의만으로 제3자 배정 유상증자가 거의 무제한적으로 가능하게 돼 기존 주주의 신주인수권과 재산권이 심각하게 침해된다”며 반기를 든 것이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이번 정관 개정안은 신주 발행에 관한 권한을 과도하게 이사회에 위임해 달라는 요구”라며 “경영권의 편의를 위해 주주의 권리를 무시한 처사”라고 말했다.
현대중공업과 현대그룹의 충돌은 지난 2011년에도 있었다. 당시 현대상선이 우선주 발행한도를 2000만주에서 8000만주로 확대하는 정관 변경을 추진했지만 현대중공업을 비롯해 KCC, 현대산업개발 등 범 현대가의 반대로 실패했다. 앞서 2006년 현대중공업은 현대상선의 주식을 기습적으로 매입, 1대주주의 자리에 올라 경영권 분쟁이라는 세간의 평가가 나오도록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현대상선 관계자는 “우선주 한도 확대는 특별한 일이 아니라 기업들이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실시하는 정상적인 경영 활동”이라며 “현대중공업은 대주주로서 현대상선의 어려운 상황을 알면서도 자금 지원 한 번 해 준 적 없이 딴지만 걸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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