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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폐아에 “나가라”고 모욕주는 사람에게, 당신이라면?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 2005년 조승우 주연의 영화 ‘말아톤’. 다섯 살의 지능을 가진 스무 살 청년, 초원이 곁에는 늘 엄마가 있다. 혼자서는 옷을 갈아입는 것도,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밥을 먹는 것도 벅차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날 초원이는 엄마의 손을 놓은 채 지하철역에 가게 된다. 혼자 지하철을 기다리면서도 자신의 세상을 만난 초원이. 그 때 가장 좋아하는 동물인 얼룩말이 눈앞에 들어온다. 초원이는 신기한 모습을 본 듯 달려간다. 손으로 만져보고 싶었다. 그런데 이 얼룩말은 낯선 여자가 입고있던 스커트의 무늬였다. 문제가 생긴다. 여자의 남자친구는 자폐증을 앓고 있는 초원이를 성추행범 취급하며 폭행을 가한다. 성인남자의 억센 손에 맞다 바닥으로 쓰러진 초원이, 눈물로 얼룩진 채 평소 엄마가 자주 하던 “우리 아이는 자폐증이 있어요”라는 말만 반복한다.

자폐증을 앓고 있는 아이를 만나게 되는 일이 비단 영화에서만 빚어지는 것은 아니다. 지난 21일 국립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2011~12년 전국적으로 9만5000여명의 부모를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조사 결과, 미국 내 자폐아(6세~17세)는 50명에 1명꼴인 것으로 나타났다. 4년 전인 2008년에는 88명 중 1명꼴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확실한 증가추세다. 학교에서 한 반의 아이들이 50명이라고 가정할 때, 그 중 한 아이는 자폐아라는 얘기다. 자폐증을 앓고 있는 아이들의 수는 늘어나지만, 이들에 대한 관심과 행동은 냉담하다. 일상에서 그 아이들을 만난다면, 우리는 어떻게 행동하게 될까.

최근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서 ‘자폐소년이 식당에서 모욕당하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라는 주제로 진행된 몰래카메라 영상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미국 ABC 뉴스의 몰래카메라 프로그램인 ‘왓 우드 유 두(What would you do)?’의 한 에피소드를 따와 한글자막까지 넣어 편집한 이 영상에는, 자폐증을 앓고 있는 아이를 만난 시민들의 다양한 행동이 담겨있다. 특히 자폐증을 앓고 있는 아이의 가정은 평범한 가족처럼 외식을 즐기는 것도, 공원에서 산책을 하는 것도 쉽지 않기에 프로그램에서는 사람들이 자폐증을 가진 아이에게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실험했다.

뉴저지에 위치한 칫챗(chitchat)이라는 식당에서 진행된 이 실험에 등장하는 주요인물들은 모두 연기자다. 자폐증을 앓고있는 소년, 앤서니에게 일부러 화를 내는 손님, 앤서니의 부모 등이 섭외된 연기자였다. 이 영상은 그들의 행동에 반응하는 손님들을 대상으로 하는 몰래카메라인 것이다.

실험카메라에서 앤서니는 같은 단어를 반복해서 말하고 행동하는 ‘전형적인 자폐증세’를 보이며 소란을 피운다. 


식당 안의 사람들은 누구도 불평하지 않았지만, 그 때 화가 난 손님을 연기하는 한 남성이 “소란 피우지 말고 집으로 돌아가 아이를 잘 관리하라”며 소리를 지른다. 앤서니의 아빠는 이 남성에게 사죄하며 “이 아이는 자폐증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하지만, 그 순간 앤서니는 물컵을 깨뜨리고 남성의 화를 돋운다.

급기야 이 남성은 “완전히 제정신이 아닌가봐”라는 무례한 발언으로 자폐증을 가진 아이에게 모욕을 준다.

식당 안의 사람들은 난감해하다 용기를 내 각자의 생각을 전하기 시작한다. 한 여성은 앤서니의 엄마에게 다가가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하고, 이 지역의 교사인 한 남성은 화를 내던 무례한 연기자에게 “그냥 뒤돌아 앉아 그 입 다물어요”라고 말한다. 다른 손님들도 한 마디씩 한다. “지금 당신이 이곳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 “당신 혼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면서 모욕감을 준 남성을 질타했다. 결국 궁지에 몰린 연기자는 “계산서를 달라”며 식당을 나서려 한다. 그 순간 식당 손님들을 모두 박수를 치며 환영한다.

몰래카메라가 끝난 뒤 제작진이 등장해 이 모든 것이 실험이었다고 알리자 손님들은 “이게 몰래카메라였다니 정말 다행”이라며 안도했다. 특히 한 여성은 눈물을 흘리며 “아이 가족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면서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이건 정말 잘못됐다. 매우 속상하고 화가 났다”며 안타까워했다.

그 뒤에 이어진 실험도 마찬가지였다. 앤서니는 갑자기 다른 손님의 음식을 집어먹었고, 그 입장에 놓인 남성은 짜증을 낸다. 이에 옆자리에 앉은 여성이 “아이가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는 것 같다”며 이해를 바라는 듯한 말을 했지만, 짜증나는 손님을 연기한 남성은 “여길 왜 왔느냐”며 “아이를 집에 데려 가라”고 요구한다. “당신들 가족이 이 곳 분위기를 망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당황한 앤서니의 가족은 우리가 식당에서 나가겠다고 말했지만, 그 안의 손님들은 하나 둘 일어나 “저 사람이 나쁜 사람이다”,“화내는 사람은 단지 한 사람이다", " 남자가 이 곳을 엉망으로 만들어놨다"고 말하며 식당을 떠날 것을 요구한다.

실험이 끝난 이후 두 번째 영상에 등장해 화를 내던 남자 연기자는 제작진과 인터뷰를 가졌다. 사실 그의 직업은 경찰이다. 그는 "만약 우리가 아이가 있고 아이들 중 하나가 자폐증을 가지고 있다면, 어느 누구도 자신의 아이를 내쫓고 싶지 않을 것"이라며 "그 아이는 우리와 똑같다.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아이"라고 말해 귀감을 주고 있다.

영상을 접한 국내 누리꾼들의 반응도 다양했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실험을 진행했다면 어땠을지 궁금하다", 미국인들의 수준높은 시민의식을 본 것 같다"라든가 "‘다르다’가 아닌 ‘같다’는 관점에서 바라본 남자의 인터뷰가 많은 생각을 들게 한다", "나라면 어땠을까, 반성하게 되는 영상이다“, ”꼭 한 번쯤 생각해봐야할 문제"라는 반응이었다.

한편, 미국 ABC 뉴스의 몰래카메라 프로그램인 ‘왓 우드 유 두(What would you do)?’는 국내에서 유행하는 몰래카메라 프로그램과는 달리 사회적으로 민감한 주제를 선정해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실험카메라’를 제작, 해당 이슈들을 공론화하며 토론의 장을 마련하고 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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