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비금융권 기업 현금보유
1조4500억弗 달해
애플 등 IT기업은 3470억弗
기술업종 전체 보유현금 38% 차지
“현찰 쌓아놓고 투자도 안해”
투자자들 강력한 배당요구 직면
미국 기업들의 현금 보유고가 사상 최고치로 상승했다.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18일(현지시간) 보고서를 내고 신용평가 등급을 매기는 비금융권 기업들의 보유 현금이 지난해 총 1조4500억달러(약 1595조원)로 전년의 1조3200억달러에 비해 10%나 증가했다고 밝혔다.
특히 1370억달러의 현금을 쌓아놓고 있는 선두 애플을 비롯,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 화이자, 시스코 등 5개 기업이 현금을 가장 많이 보유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기업의 현금 보유 규모는 지난해 총 3470억달러로 전체 비금융기업들이 보유한 현금의 24%를 차지한다. 이는 지난 2011년에 이들 5개 기업의 현금 보유액이 2780억달러로 전체의 21%를 차지했던 것에 비해 더욱 증가한 셈이다. 특히 현금 보유 선두인 애플은 이런 추세라면 올 연말에는 1700억달러의 현금이 쌓여 비금융회사 보유 현금 총액의 11%를 차지할 전망이다.
업종별로도 현금 보유 상위 5개 기업 중 화이자를 제외한 4개 기업이 기술업종으로, 전체 보유현금의 38%를 차지하고 있다. 무디스는 기술업종은 지난 3년간 늘어난 미국 기업들의 현금 보유 증가분의 60%를 차지했다고 분석했다.
미국 기업의 사내유보 현금이 10달러 늘어날 때 이 중 6달러는 기술기업들이 쌓아놓은 셈이다.
현금 보유가 급증하는 데는 미국 기업들이 세계 최고 수준(35%)인 미국 법인세를 피하기 위해 해외 현지법인에서 벌어들인 돈을 본국으로 송금하지 않고 있는 점도 작용했다. 기업들이 보유한 현금 가운데 58%인 8400억달러가량이 해외에 있다고 무디스는 밝혔다. 무디스는 전반적으로 대규모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신용도에 긍정적인 요인이라고 평가했다. 만약 자본시장이 왜곡될 때 보유한 현금으로 단기 부채를 갚을 수 있고 사업 여건이 심각하게 나빠졌을 때 대응이 가능하다고 평가했다.
한편 미국 기업들은 현찰을 쌓아놓고 투자하지 않으면서 배당금으로 나눠달라는 투자자들의 거센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애플은 그린라이트의 주주행동주의 운동에 못 이겨 조만간 배당금을 늘릴 것으로 시장에서는 전망하고 있다.
델컴퓨터 역시 창업주 마이클 델이 사모펀드와 손잡고 자사주 매입을 통한 상장 폐지를 시도했다가 기업사냥꾼 칼 아이칸이 제동을 걸며 배당금이나 늘리라고 압력을 넣고 있어 곤혹스러운 상황이다.
해외 현금 송금 문제와 관련, 최근 시스코의 존 체임버 최고경영자(CEO)는 미국 기업들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돈을 들여올 때 일시 면세해주는 ‘세금 휴일’을 달라고 미 정부에 건의했으나 여론은 비판적이다.
고지희 기자/jgo@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