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크런 사태에 유로존 한발 후퇴
반발 여전…시행까진 ‘산넘어 산’
유로존 위기의 새로운 뇌관으로 급부상한 키프로스가 구제금융을 받는 조건으로 모든 은행예금에 과세하려다 반발이 거세지자 10만유로 이상 고액예금에만 과세하기로 했다.
하지만 예금에 대해 과세하는 것은 전례가 없을 뿐 아니라 자칫 나쁜 선례가 되어 유로존 예금 시스템의 붕괴 위기마저 초래할 수도 있는 조치라며 반대하는 여론이 유로존 안팎에서 거세고 키프로스 국민들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어 시행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AFP통신은 18일(현지시간) 익명의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관계자를 인용, 유로존 재무장관들이 이날 밤 긴급전화회의를 열고 10만유로 미만 예금은 과세 대상에서 제외키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당초 키프로스 정부는 지난 16일 유로존과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100억유로(약 14조4000억원)의 구제금융을 받는 대신 예금에 세금을 부과, 58억유로를 확보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10만유로 이상 예금에는 9.9%, 그 이하에는 6.75%의 일회성 세금을 매기기로 했지만 뱅크런(은행예금인출) 사태가 일어나는 등 반발이 거세자 유로존이 한발 물러난 것으로 보인다. 키프로스 정부는 10만유로 이하 예금에 과세하지 않는 대신 그 이상 예금에는 15.6% 세금을 부과할 것이라고 블룸버그통신이 전했다.
키프로스 의회는 당초 구제금융 합의안 비준안 표결을 세율 조정 등 이유로 하루 연기한 19일 오후 6시에 실시하기로 했다. 키프로스 의회는 전체 56석 가운데 20석만 여당이 차지하고 있어, 비준안 통과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예금 과세 방안이 알려진 직후 뱅크런 위기를 맞았던 키프로스 당국은 21일까지 ‘임시 은행휴무일’로 지정, 은행 영업을 중단하기로 했다.
이런 가운데 독일의 주도로 키프로스에 조건부 구제금융안을 이례적으로 제시한 유로존에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앞서 구제받은 포르투갈의 대통령은 “상식이 없는 매우 위험스러운 조치”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오스트리아 재무장관은 “실수였다. 수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키프로스 전체 예금액의 30~50%에 해당하는 200억~301억달러가 예금된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예금 과세가 위험한 것”이라고 강도 높게 반발했다. 블룸버그통신은 당초 독일 등이 고통분담 차원에서 예금 일부를 떼는 유례 없는 조치를 내놓았지만 이는 키프로스가 90년대 이후 동유럽의 금융허브로 바뀐 사실을 간과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키프로스 시중은행 전체 예금 700억유로 중 500억유로가 외국인 돈이다. 지중해 작은 섬에 불과한 키프로스의 뱅크런이 주변국으로 빠르게 전염될 수도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권도경 기자/ko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