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권도경 기자] 로마가톨릭 교회를 이끌 신임 교황을 선출한 이번 콘클라베(교황선출비밀회의)는 이변 그 자체다. 12일(현지시간) 개막한 이후 다섯차례 투표 만에 이례적으로 비유럽권 출신 교황을 택했다. 식민지 시절 강압에 의해 받아들인 가톨릭이 뿌리내린 남미 대륙 출신이 새 교황에 뽑혔다.
비유럽권 새 교황이 선출된 배경에는 유럽 중심의 가톨릭 교회로는 개혁 요구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위기감이 한몫했다. 외신들은 차기 교황은 가톨릭 역사상 가장 어려운 시점에 등극하는 교황으로 보고 있다. 19일 공식취임할 프란치스코 신임 교황 앞에도 이미 달갑지 않은 난제들이 쌓여있다. 전임교황 베네딕토 16세가 건강상 이유로 조기퇴진하면서 남겨놓은 미완의 숙제들이다.
▶남미, 가톨릭의 새 보루= 이번 콘클라베를 앞두고 비유럽권 교황이 선출될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제기됐다. 유럽 출신 교황이 나올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예측됐지만, 콘클라베 시작 이틀만에 비유럽권 교황을 선출한 것은 추기경들 사이에 공감대가 어느 정도 이뤄져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비유럽권 교황 배출은 가톨릭 내부 변화에서 요인을 찾을 수 있다. 1910년 당시 전 세계 가톨릭 신자 2억 9100만명 가운데 70%는 유럽인이었다. 그러나 신자 수가 11억명으로 늘어난 2010년에는 23%로 크게 줄었다. 반면 라틴아메리카에서 가톨릭 교세는 확산을 거듭했다. 라틴아메리카의 신자수는 1910년 7000만명에서 2010년에는 4억 2500만명으로 늘었다. 전 세계 신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5%다. 가톨릭 신자수가 감소세를 보이는 상황에서 라틴아메리카는 보루 역할을 하면서 입김을 키워온 셈이다.
비유럽권 새 교황 선출을 계기로 가톨릭의 무게 중심 자체가 유럽을 벗어날 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유럽 중심의 가톨릭 교회의 보수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가운데 남미 출신 교황이 선출됨에 따라 바티칸에 어떤 형태로든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 난제에 둘러쌓인 새 교황= 신임교황은 교회의 권위를 무너뜨리지 않으면서도 사회의 변화상을 수용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외신들은 사제들의 성추문, 돈세탁 스캔들, 내부 권력 투쟁 등을 신임 교황이 피해갈 수 없는 난제로 꼽았다. 전임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재임기간 내내 바티칸을 둘러싼 추문에 시달렸다. 특히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는 성직자들의 아동 성폭행 사건이 여러 차례 불거졌다. 베네딕토 16세는 “입에 담을 수 없는 범죄”라며 피해자에게 사과했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바티칸이 조사에 미온적이라며 실질적 해결을 촉구하고 있으며, 아직 밝혀지지 않은 성추문 사건들이 많다는 주장도 여전하다
교회 내 선결 과제도 만만찮다. 지난해 터진 바티리크스 사건으로 교회내부 권력투쟁과 비리 문제로 불거지면서 타격을 받은 교회의 권위를 세우고, 교황청의 비밀스러운 재정관리와 돈세탁 의혹도 청산해야한다. 이밖에 동성애와 동성간 결혼 허용문제, 가톨릭내 여성지위 향상, 낙태, 안락사 문제 등 사회 변화로 인해 가톨릭의 전통 가치가 도전받는 현안도 풀어야할 난제다.
권도경 기자/ko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