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 경제=김영화 기자]세계적으로 지하 경제는 축소되는 추세지만, 지역별로 상당한 편차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통 개도국의 지하경제 규모가 선진국보다 배 이상 큰 것으로 나타났다. 선진국 지역 중 예외적으로 제조업 기반이 취약하고, 자영업이 성행하는 남유럽은 지하 경제의 천국이다. 재정 파탄에 빠진 남유럽 정부들은 세금을 늘리려고 ‘지하 경제와의 전쟁’에 나섰지만, 이렇다할 효과를 보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실정이다.
▶지하 경제 규모 감소 속 남유럽은 22.5%에 달해=오스트리아 린츠대 프리드리히 슈나이더 교수의 지난 2010년도 논문에 따르면, 전세계 지하경제 규모는 2007년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평균 16.1%수준이다. 1999년의 17.9%에서 1.8%p 하락한 셈이다. 이 기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속한 선진국은 14.2%에서 13.0%로 1.2%p, 개도국의 경우 29.6%에서 26.2%로 3.4%p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적으로 하향세가 대세인 가운데 지하경제 규모는 선진국일수록 작게 나타나는 셈이다.
보통 자영업자 비율과 지하경제의 크기가 거의 정비례하는 점도 눈에 띈다. 자영업자 비율이 높은 나라일수록 지하경제 비중이 높다. 제조업 기반이 취약한 남유럽은 선진국인데도 지하경제 비중이 2010년도 기준 22.5%에 달한다. 사회주의 요소의 잔재로 유럽내에서 지하 경제의 비중이 최고인 동유럽의 24.6%에 맞먹는 규모다. 또 북유럽의 13.7%와 서유럽 11.1%를 훨씬 능가한다.
실제 남유럽 국가들은 가벼운 세금 누락 등 통계에 잡히지 않는 경제 활동이 성행하고, 현금 거래가 보편적이어서 탈세가 어렵지 않은 실정이다. 여기에 정치적 특수성도 이 지역 지하 경제 활성화에 한몫하고 있다. 특히 이탈리아는 남북간 발전 격차에 따른 지역 감정이 여전하고 스페인은 카탈루냐 등 일부 지방의 분리 독립 운동이 활발한 상황이다. 지방색이 강하고, 중앙 정부의 통제력이 약해 지하경제가 확대될 수 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다.
이러다보니 탈세가 판을 쳐 국가 재정까지 파탄났다. 남유럽 중에서도 지하경제가 GDP의 4분의 1에 달하는 그리스에선 ‘파켈라키(작은 봉투)’라는 말이 널리 쓰일 정도로 뇌물이 판친다. 또 그리스 부유층 사이에선 재산세를 덜 내려고 집에 있는 수영장을 물탱크로 신고하거나, 고급 스포츠카를 소득이 없는 다른 가족 이름으로 신고하는 등 각종 탈세행위가 널리 퍼져 있다. 2009년도 그리스 재정적자 360억 유로 중 3분의 2가 탈세로 인한 것이란 분석도 나왔다.
2011년 기준 지하 경제 규모가 GDP의 26.7%인 이탈리아, 22.2%인 포르투갈, 19.2%인 그리스 등 다른 남유럽 국가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남유럽, “새는 세금 잡아라”..지하경제와의 전쟁=세계 각국 정부가 지하 경제 양성화에 앞장서는 가운데 특히 위기의 남유럽 국가들도 지하 경제 척결에서 답을 찾고 있다. 그리스는 과거에 대기업이나 부유층만을 대상으로 형식적인 탈세 조사를 했으나 최근 영수증 발급 의무화 등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에도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사업장에서 영수증을 발급하지 않을 경우 소비자는 이용료를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규정까지 마련했다.
스페인 정부는 ‘연간 조세관리 계획안’에 따라 지하 경제 규모를 반으로 줄여 연간 385억 유로에 달하는 세금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 특히 지하경제 비중이 가장 높은 건설업 부문의 단속을 강화하고, 지방정부와 손잡고 징수 과정을 투명화해 일정액 초과시 기업 간 현금거래를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이탈리아는 불성실한 납세자 색출을 위한 새로운 산출법을 도입하는 등 그동안 간과했던 세원확보에 힘쓰고 있다. 납세자의 지출 내역을 세분화해 신고 소득의 20%를 넘을 경우 국세청은 세부 내역서를 요구해 경고를 주는 식이다.
또 유럽연합(EU) 및 주요 회원국은 최근 다국적 기업에 대한 탈세 조사에 적극 나서면서 규제를 강화하고 과징금을 부과하고 있다.
김영화 기자/bettykim@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