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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쉼표> 소록도의 꿈
“보리 피리 불며/봄 언덕/고향 그리워/피ㅡㄹ 닐니리.//보리 피리 불며/꽃 청산(靑山)/어린 때 그리워/피ㅡㄹ 닐니리./보리 피리 불며/인환의 거리/인간사 그리워/피ㅡㄹ 닐니리.”

‘문둥이’ 시인으로 불린 한하운의 시 ‘보리피리’다. 사람의 마을이 사무치게 그리웠을 시인의 눈물이 보인다. 고은 시인은 고등학교 3학년 하굣길에 이 시가 실린 시집 ‘한하운시초’를 주워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그때 고은은 “나도 한하운처럼 나병에 걸리겠다. 그리고 나도 시를 쓰겠다”고 맹세한다.

한센인들의 고향, 소록도에는 현재 600여명의 환자가 생활하고 있다. 대부분 70세가 넘은 노인들이다. 이들에게 오늘 5일은 기억될 만하다. 국립소록도병원 옹벽에 그린 한센인들의 꿈과 희망을 담은 길이 110m, 폭 3m의 암각화 ‘소록도의 꿈’에 화룡점정을 찍는 날이다. 한센인 30명이 암각화 작가 박대조 씨와 화가, 사진작가와 함께 자신의 얼굴에 색칠했다. 그동안 남에게 보이기 부끄러웠던 얼굴을 환자들은 아기 얼굴 보듬듯 조심스럽게 붓질을 해나갔다. 이들은 처음에는 밑작업을 위한 사진찍기조차 거부했다. 거울 보기도 힘들었을 환자들은 이제 실루엣으로 새겨진 자신의 얼굴을 오래 들여다볼 수 있게 됐다. 이 프로젝트를 1년간 추진해온 박대조 씨는 “처음에는 환자가 작품의 대상으로만 여겨졌는데 같이 지내면서 내 마음이 열리고 변했다”고 털어놨다. 여기에는 수백원에서 수만원까지 십시일반으로 기부한 크라우드 펀딩 3000만원이 큰 힘이 됐다. 병원 옹벽은 소록도 1번지 중앙공원으로 연결된다. 일제 때 한센인 6만여명이 강제 동원돼 3년반 동안 조성한 중앙공원은 이제 매년 50만명의 관광객이 찾는 명소가 됐다. 한하운의 ‘보리피리’ 시비도 거기 길게 누워 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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