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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커버스토리] 영화배우 출신 레이건…美 최고의 커뮤니케이터…역사상 최연소 대통령 클린턴…경제정책 최고점…아들 부시, 재정적자 최대·지지율 최저 불명예
미국 대통령 면면 살펴보니
삼권분립 민주주의 국가를 세계 최초로 설립한 미국은 대통령제도의 원조다.

제44대 버락 오바마 대통령까지 많은 지도자를 배출했지만 현대사에서는 도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단연 눈에 띈다. 레이건은 구 소련과의 군비 확장 대결을 통해 소련의 붕괴를 가져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고, 동서 냉전을 승리를 이끌었다. 안으로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도입해 미국 경제의 체질을 바꾸고, 쌍둥이 적자에 시달리던 미국 경제의 체질 개선을 이뤄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영화배우 출신인 레이건 대통령은 뛰어난 화술로 소통의 달인이었다. 미국 역사상 최고의 커뮤니케이터라는 평가를 받는다.

레이건의 시대를 이어 공화당 재집권을 이룩한 조지 HW 부시 대통령은 저조한 대중적 인기로 아칸소의 시골 주지사였던 빌 클린턴에게 패해 재선에 실패했지만 정치외교학자에게는 당시 격동하던 국제 정세를 잘 헤쳐 나갔다는 높은 평가를 받는다.

취임하지마자 동독 베를린장벽의 붕괴와 동ㆍ서독 통일, 고르바초프 러시아 대통령의 하야,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촉발된 걸프전쟁 그리고 중국의 천안문 사태 등 쉴새없이 터진 대외 현안을 적절하게 처리하면서 최악의 상황을 막았다. 하지만 대외정책에 지나치게 자원과 시간을 쏟아 막상 미국 경제는 침체되면서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는 영리한 대선 캠페인을 펼친 클린턴에게 패해 단임으로 물러났다. 


클린턴 대통령은 역사상 최연소 대통령으로 백악관에 입성하면서 기대와 우려를 자아냈지만, 젋고 유능하고 동시에 정치적으로 능수능란했다. 세계무역기구(WTO)를 발족시켜 당시 미국이 원하던 지적재산권의 전 세계적 확산을 이뤄냈고, 멕시코를 끌어들여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맺고 한국 등에 금융시장 개방을 강요해 미국의 무역과 금융산업을 키워냈다. 경제정책은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는 최악의 적자에 시달리던 미국을 집권 8년 만에 흑자재정으로 돌려놓고 퇴임했다. 하지만 조지 HW 부시 대통령의 실패를 거울삼아 제3세계의 분쟁에 개입을 꺼리면서 소말리아 내전이나 아프리카 르완다 학살사건, 코소보 인종청소 사태와 같은 대량학살 사건 등에 늑장 대응하며 미국의 외교안보정책에 블랙홀 시대를 가져왔다는 혹평을 받는다.

아버지를 이어 2001년 제43대 대통령에 오른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9ㆍ11테러 사건이 터지자 바로 아프가니스탄에 진격해 알카에다 정권을 밀어냈고, 이듬해 이라크전쟁으로 사담 후세인을 제거했다. 하지만 이라크 전쟁의 빌미였던 대량살상 화학무기는 후세인 궁에 없었고, 국제적인 반미감정만 일으킨 채 이라크전쟁은 쉽게 마무리되지 않고 있다. 막대한 전쟁비용 투입과 경기침체를 막기 위한 초저금리 정책 그리고 금융시장 자율화 정책은 주택버블로 이어져 2008년 미국 월가의 금융위기를 몰고왔다. 부시 대통령은 결국 사상 최대의 재정적자와 최저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백악관에서 물러났다.

2009년 미국 헌정 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에 당선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의 대선 공약대로 평화와 화합을 이끌 지도자로 기대를 모았으나, 막상 자신의 국정 과제였던 의료개혁을 강하게 밀어붙이면서 집권 내내 보수 공화당과 한 치 양보없는 대립으로 치달았다. 대외정책에서는 러시아와 핵폐기 협상 타결, 중동 민주화 지원 등 부시행정부 시절의 일방주의가 빚어낸 반미 감정을 희석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고지희 기자/j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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