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 경제=김영화 기자]전세계가 ‘신용불량시대’다. 정부도, 기업도, 개인도빚더미에 나앉은 이때, 무소불위의 권력을 쥔 신용평가사(신평사)들의 횡포를 막기 위한 세계 각국의 규제 움직임도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4일(현지시간) 미 법무부는 금융위기 당시 모기지(주택담보대출) 채권에 대한 잘못된 평가를 내린 세계 1위 신평사인 스탠더드앤푸어스(S&P) 사에 대한 법적 대응에 나설 방침으로 전해졌다. 신용 평가사의 신용이 또 도마에 오른 형국이다.
신평사들에 대한 개혁론은 지난 2000년대 초반 엔론과 월드컴의 분식회계 사태 당시 조기에 문제를 짚어내지 못했다는 비난에서 출발했다. 이후 2007년 미 금융위기와 2010년초 그리스의 구제금융 신청으로 시작된 유럽 재정위기를 거치면서 신평사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금융시장의 ‘파수꾼’이라는 신평사들이 제때 위험을 알리지 않고, 엉터리 평가를 해 오히려 화를 키웠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신용 평가를 둘러싼 이해상충 문제도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신평사들의 수익은 평가기업으로부터 받는 수수료가 대부분을 차지해 고객사에 유리한 신용판단을 한다는 의혹이 끊이질 않고 있다. 이러다보니 ‘채권왕’ 빌 그로스는 신용평가 무용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이에 신평사의 독립성을 키우고, 평가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울 수 있는 규제 강화 방안이 마련되고 있다. 지난해말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EC) 및 유럽의회와 EU 27개 회원국이 신평사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방안에 합의하기도 했다. 이에 따르면 신평사의 위법행위 및 중과실로 손실을 입은 투자자들은 신평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가능하다. 또 이익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어떤 투자자들도 신평사 지분을 5% 이상 보유할 수 없고, 신평사들은 EU 주식시장 마감 이후 혹은 개장 1시간 이전에 평가결과를 발표할 수 있다. 실제 최근 호주 지방자치단체 13곳은 2006년 S&P가 파생상품인 ‘고정비율부채증권(CDPOs)’에 매긴 최상위 등급(AAA)을 믿고 투자했다가 2년도 안 돼 큰 손해를 봤다며 제소했고, 호주 연방법원은 원고측 손을 들어줬다. 더이상 신평사가 법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다. 미국계 신평사에 대한 반발로 EU는 자체 신평사 설립을 추진중이며, 중국 러시아 등도 같은 행보를 하고 있다.
좀더 근본적으로 3대 신평사가 독과점적 지위를 누리는 왜곡된 시장구조를 뜯어고쳐야 한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따르면, 지난 2011년말 기준 S&P와 무디스가 전체 시장의 약 83%를 차지하고 있으며, 여기에 피치를 포함한 3대 신평사의 점유율은 95%에 달한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시장 진입규제를 완화하고, 신규 업체들의 진출을 통해 업계 경쟁력을 높이자는 논의가 활발하다. 발행사와 신평사간 로테이션을 통해 유착 고리를 없애고 신평사를 독립적인 기구로 개혁하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3대 신평사들은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신용평가가 표현의 자유에 해당한다며 반발해 논란이 되고 있다.
김영화 기자/bettykim@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