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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드가 금기시되던 근대부터 오늘까지,한국 근현대누드 한자리에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 "어, 이런 유명 작가들도 누드를 그렸다고? 뜻밖이네..."

여인의 벗은 몸을 그리는 것이 금기시되던 시절에도 작가들은 누드를 그렸다. 여인의 나신이야말로 지구상 최고의 아름다움이자, 살아있는 생명의 근원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서울 소공동의 롯데백화점 본점의 롯데갤러리가 한국 미술계에서 누드화가 시작되고, 자리잡아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전시회를꾸몄다. 31일 개막된 ‘화가의 여인,나부(裸婦): 한국 근현대 누드 걸작전 1930~2000’이 그 것.

이번 전시는 서구미술의 소산인 누드화가 보수적인 한국 근대미술계에 어떻게 싹을 틔우고, 예술의 한 부문으로 뿌리내려갔는지 그 과정을 살펴보기 위해 기획됐다. 출품작들은 한국에서 누드화가 시작된 이후 193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근현대기의 대표적 누드화 50점이다.

근대기 이 땅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누드는 동경미술학교 출신의 김관호(1890~1959)가 그린 ‘해질녘(1916)’일 것이다. 김관호는 일본 문부성 주최의 미술전람회(약칭‘문전(文展)’)에서 이 작품으로 특선을 받았으나 여인 누드였던 관계로 수상소식을 보도한 당시 신문지면에 아쉽게도 그림은 실리지 못했다. 김관호를 비롯해 동경미술학교에서 일본인 교수로부터 서양화를 배웠던 일군의 작가들에 의해 우리 미술계에도 서구 아카데미즘의 전통을 따른 누드화가 시도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 누드화는 일반인에겐 매우 당혹스런 그림이었다. 



이번 전시는 1960년을 기점으로 전,후로 나눠 구성됐다. 즉 유학 1세대들이 서구문물의 수혜를 받으며 제작했던 1960년대 이전 작품들과, 본격적으로 현대미술로의 이행을 시작했던 1960년대 이후 작품으로 나뉘어졌다.
1960년대 이전에 누드화를 그렸던 이들은 30여명으로 집계된다. 김관호, 구본웅, 이종우, 서진달, 오지호, 임군홍, 이쾌대 등이 그들이다. 이들의 일제 강점기 시대 누드는 어딘지 이국적이다. 이에따라 아직 수업의 과정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한국전쟁 무렵 피난기 예술가들은 의도적으로 예술에 탐닉했다. 이어 파리나 유럽으로 유학을 떠난 작가들을 통해 좀 더 성숙되고 세련된 누드작품이 선보여지기 시작했다. 이인성, 권진규, 권옥연, 이림, 한묵, 박영선, 김정숙, 김경을 통해 이러한 경향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일반에 최초로 공개되는 이인성의 ‘초록배경의 누드’(1935년)와 일평생 단 1점의 누드화만 그렸다는 한묵의 ‘누드’(1953년)가 포함돼 관심을 모은다.



1960년대 이후 전쟁의 상흔이 아물고, 경제개발이 본격화되며 누드화 역시 큰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풍만한 육체, 다소곳한 포즈, 향토빛의 편안한 색감 등 정적이면서도 편안한 분위기의 누드가 쏟아졌다. 강대운, 김경승, 남관, 이종무, 장리석, 전혁림, 정문규의 작품이 대표적인 예다. 특히 최영림과 김흥수는 일관된 주제의식과 형식으로 누드화 부문에서 독보적 위치를 점했다. 천경자의 누드화는 ‘여성이 그린 여성상’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마지막으로 1980년대 이후의 누드화는 종전과는 달리 매우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됐다. 이번 전시에는 구자승, 박득순, 배동신, 오승윤, 이만익, 임직순, 최쌍중, 황영성의 작품이 출품됐다. 


성윤진 롯데갤러리 큐레이터는 "지난 100여 년간 한국의 수많은 작가들이 누드화를 천착해왔음에도 그 예술적 가치는 아직도 혼란스러운 게 사실이다. 누드화는 인간 자체에 가치를 부여한 작업인데도 말이다. 앞으로 우리 미술계에서 ‘신체’에 대한 보다 활발한 논의와 창작, 새로운 시각들이 풍부해지길 기대하며 전시를 꾸몄다"고 밝혔다. 이어 "협소한 공간관계로 페미니즘과 민중미술의 시각에서 바라본 누드, 미디어아트, 사진 등 최근 경향을 살리지 못해 아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현대 한국 누드미술을 서술적으로 전시함으로써 이후의 가능성을 연 것은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시는 2월 20일까지. 02)726-4429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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