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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 - 김형곤> 환율전쟁,경주 코뮈니케를 벌써 잊었단 말인가
경주 회의가 있은 지 2년여가 지난 요즘 글로벌 환율전쟁이 격화되고 있다. 얼마 전 폐막한 WEF는 일본의 엔저정책에 대한 성토장을 방불케 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일본에 제대로 돌을 던질 수는 없었다. 모두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ㆍ중앙은행총재 회의가 열리던 2010년 10월 22일 경주 현대호텔.

비공개 회의가 열리기 직전 윤증현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을 만난 티머시 가이트너 미국 재무장관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경상수지 흑자규모를 국내총생산(GDP)의 4% 이내로 제한하자는 윤 장관의 경상수지 목표제를 들은 순간이었다. 안 될 거라는 가이트너 장관의 말을 뒤로 한 채 윤 장관은 크게 쉼 호흡 한 번하고는 회의장으로 들어갔다. 윤 장관의 머릿속에는 또 다른 회심의 카드가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윤 장관이 경상수지 목표제를 제안하자 각국 재무장관들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흑자 규모가 큰 독일, 중국을 비롯해 일본이 즉각 반대하고 나섰다. 라이너 브뤼더레 독일 경제장관은 “말도 되지 않는 얘기다. 경상수지를 인위적으로 관리할 순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셰쉬런 중국 재정부장은 “구체적인 수치(4%)를 포함하는 것은 시기상조다”고 말했다. 노다 일본 재무상은 “일본은 엄격한 목표치에 대해 긍정적이지 않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다”고 잘라말했다. 의장국 위치에 있던 윤 장관도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다면 판을 깨자는 말인가!” 이 말에 각국 재무장관들이 고심하는 기색이 역력해지자 윤 장관은 감춰둔 카드를 꺼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바로 ‘보다 시장결정적인 환율제도로 이행하고 경쟁적인 통화절하를 자제한다’는 문구를 담은 경주 G20 코뮈니케(공동성명서)다. 애초에 경상수지 목표치는 채택이 어려울 것임을 안 윤 장관이 기습작전을 감행, 반대국의 명분을 살려주면서도 의미있는 내용을 명문화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어렵게 도출해낸 성명서지만 구속력은 없었다. 경주 회의가 있은 지 2년여가 지난 요즘 언제 그랬냐는 듯 글로벌 환율전쟁이 격화되고 있다. 얼마 전 스위스에서 폐막한 세계경제포럼(WEF)은 일본의 엔저정책에 대한 성토장을 방불케 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일본에 제대로 돌을 던질 수는 없었다. 모두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1,2차도 모자라 3차양적완화(QE3)를 단행 중이다. EU는 채권 무제한 매입에 나서면서 유동성을 대량 공급했다. 독일은 유로화라는 단일 통화의 최대 수혜국이라는 핸디캡을 안고 있다.

런민은행의 이강(易綱) 부총재 역시 주요 선진국들의 양적완화를 비판하고 나섰지만 중국은 환율조작국이라는 오명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지난 5년간 실질통화가치가 많이 떨어진 한국이 일본을 비난하는 건 위선적이라는, 한국을 겨냥한 외신 칼럼(니얼 퍼거슨 하버드대 교수)마저 나왔다.

이런 점에서 다음달 14~15일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G20 재무장관·중앙은행장 회의가 또다시 일본에 대한 성토장이 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그렇다고 경주 회의와 같은 의미 있는 성명서를 기대하기는 더더욱 어려울 전망이다.

한국, 일본, 중국 등 주요국은 모두 새 지도부가 등장, 자국의 경제를 살려야 하는 다급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 의장국인 러시아의 중재 역할에도 의문이 든다. 그럼에도 끊임없는 국제공조만이 살길이라는 사실은 더욱 명백해지고 있다.

kimh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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