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한국인 피 흐른다” 日 시의원, 약혼녀와 파혼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는 이유로 한 여성이 일본인 남성에게 파혼을 당했다. 우익 정치인인 이 남성은 자신의 ‘정치적 신조’를 이유로 들며 파혼했으나, 여성은 ‘출신과 태생에 대한 부당한 차별’이라면서 약혼자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마이니치 신문 등 일본 언론은 오사카 시에 거주하고 있는 한 여성(28)이 약혼자였던 효고 현에 거주하고 있는 30대 시의원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고 지난 28일 보도했다.

사연은 이렇다. 두 사람은 결혼상담소의 소개로 지난해 3월 처음 만나 교제를 시작했다. 여느 연인들처럼 자연스러운 만남을 이어가던 두 사람, 그 해 6월 이 여성은 시의원으로부터 청혼도 받았다. “당신을 사랑한다”는 내용이 담긴 편지와 함께 “결혼하고 싶다”는 말을 전한 것. 연인들은 행복한 때를 만끽하며 미래를 약속했고, 이후 며칠 뒤 여자는 한 가지 고백을 했다. 자신의 할아버지가 재일한국인이라는 고백이었다. 물론 여자의 국적은 일본이었지만, 남자는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이유로 약혼을 파기했다. 이에 여성은 지난해 10월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시의원 남성은 오사카 지법에 제출한 서면을 통해 “결혼하고 싶다”고 했던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다만 “보수파 정치인으로 활동하며 재일한국인들에 대한 선거권 부여에 반대하는 등의 정치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정치적 신조를 이유로 결혼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약혼은 성립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번 사건과 관련, 재일 외국인 문제에 정통한 다나카 히로시 릿쿄대 명예 교수는 마이니치 신문을 통해 “결혼에서 출신과 태생을 묻는 발상은 문제가 있다. 정치적 신조라는 이유는 정당화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1983년 일본인 남성이 한국국적 여성에게 ‘국적을 이유로’ 파혼해 제기된 위자료 청구소송의 판례를 보면, 오사카지법은 “민족 차별의 존재에 기인한 약혼 파기는 부당하다”고 판단, 남성에게 240만엔을 지급하라는 명령을 내린 바 있다.

다만, 이번 소송에서 시의원 남성은 약혼성립에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상황이기에 쟁점 역시 두 사람 사이에 약혼이 실제로 성립했는지의 여부에 있다. 과거 판례에서는 쌍방의 부모나 친구에게 약혼 의사를 전달했는지, 폐물과 반지를 교환했는지 등의 여부가 있다면 약혼 성립으로 판단했다. 

보도에 따르면 현재 시의원은 소송과 관련한 일체의 입장을 변호사에게 일임하고 있으며,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여성은 파혼으로 인해 자신이 입은 상처를 다시금 생각해봤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shee@heraldcorp.com
연재 기사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