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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끈떨어진 독립성…중앙은행들의 ‘굴욕’
경기침체로 통화정책 정치화 우려
독립성 훼손…일개 행정기관 전락

日 BOJ, 아베노믹스에 굴복
獨 중앙銀총재 “환율전쟁 촉발”

전 세계 주요 중앙은행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정치권의 입김에 휘둘리거나 정부의 입맛대로 정책을 고치는 등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훼손되고 있는 것. 글로벌 경기침체 이후 주요 은행의 통화정책이 정치화했다는 우려도 나온다. 물가관리라는 본연의 임무를 저버린 채 정부의 정책적 요구를 받아들이면서 일개 행정기관으로 전락하는 양상마저 나타난다. 중앙은행이 물가안정과 통화정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게 되면서 최우선시돼야 할 독립성이 종말을 고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중앙은행 독립성 훼손 논란에 기름을 부은 것은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의 무제한 금융완화정책이 계기가 됐다.

BOJ는 지난 22일(이하 현지시간) 올해 첫 통화정책회의에서 ‘돈을 풀라’는 아베 신조 총리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백기투항했다. BOJ가 굴복한 배경에는 정책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일본은행장을 경질할 수 있도록 일본은행법을 개정하겠다는 아베 총리의 엄포가 있다. 이는 금융완화정책을 펴고 있는 미국ㆍ유럽의 중앙은행이 취한 형식과도 큰 차이가 난다. 이들 중앙은행은 독자적 판단으로 정책을 결정한 모양새를 취했지만, BOJ에는 정부의 노골적인 압력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BOJ의 결정은 환율전쟁의 불을 지피고, 중앙은행 독립성이 퇴조했다는 비난을 불러왔다. 


독일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의 옌스 바이트만 총재는 지난 21일 “중앙은행에 대한 통화완화 압박이 전례없이 강하게 제기되면서 독립성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헝가리와 일본 등 나라 이름을 거론하면서 환율을 정치쟁점화하는 역효과를 낳고 있다고 강조했다.

바이트만은 “위기 타개가 중앙은행의 핵심 역할이 아니다”며 “중앙은행의 역할을 (물가관리로) 좁히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중앙은행의 독립성 침해는 일본만의 현상은 아니다. 미국과 유럽 중앙은행도 물가안정보다 경기부양에 힘쓰라는 정치권 요구를 받아들이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2일 ECB의 통화정책 기조도 크게 흔들리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FT는 미국과 일본 등 중앙은행이 잇따라 인플레 목표치를 높이는 것이 ECB에 도전라고 분석했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가 ‘정책 환율’에 거부감을 느끼고 있으나 다른 중앙은행이 정치적 대열에 편승하면 소신을 굽힐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현상은 중앙은행 본연의 통화정책이 정부의 재정정책에 연계되거나 종속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통화정책의 정치화가 불가피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미국 월가에서는 중앙은행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받아들일 때가 됐다는 주장이 나온다. 즉, 통화정책이 이제 금융현안이 아닌 정치적 사안이 됐다는 지적이다. 

권도경 기자/k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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