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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황창규의 실험’ 은 계속돼야 한다
삼성전자 반도체 총괄 사장을 지낸 황창규 지식경제부 R&D전략기획단장의 서울대 사회학과 초빙 교수 임용이 결국 무산됐다. “산업재해 피해자를 양산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총 책임자였던 황 단장을 강단에 세울 수 없다”며 일부 학생이 극렬 반대, 임용 절차를 중단한 것이다. 황 단장은 이른바 ‘황의 법칙’으로 잘 알려진 세계 최고 반도체 전문가다. 그의 첨단기술에 대한 경험과 노하우를 사회학과 접목시켜 새로운 세상을 열어보자는 ‘의미 있는 실험’이 백지화된 것은 아쉬운 일이다.

현대사회의 빠른 발전을 과학과 기술의 진보 없이 설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인문사회학을 공부하는 학생들도 과학이 바꾸는 세상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서울대가 황 단장의 초빙을 계획한 것도 학생들에게 현대사회를 진단하고 미래를 내다보는 다양한 안목을 길러주기 위해서다. 그러나 정작 학생들은 이를 외면했다.

더 안타까운 것은 황 단장의 교수 임용을 ‘사회학이 노동을 버리고 자본의 편에 서는 것’이라는 학생들의 편협한 시각이다. 우선 우리 사회를 자본가와 노동자 두 계급으로 단순 재단하는 학생들의 이분법적 사고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설령 그렇게 양분해서 본다 하더라도 균형감을 상실한 채 노동자 한쪽의 입장에서만 바라보는 것은 옳지 않다. 지금 지구촌은 21세기를 맹렬히 달리고 있는데 대한민국 최고 지성이라는 서울대 학생들은 19세기적 사고에 갇혀 있다는 사실이 황당하고 불안하다.

학생들을 설득하지 못한 교수들도 무거운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사회학과 교수들은 학생들이 ‘20세기의 낡은 패러다임’에 묶여 있다고 개탄하면서 황 단장의 교수 임용절차를 중단한다고 홈페이지를 통해 밝혔다. 그러나 왜 다양한 사고력을 키우고, 특히 황 단장의 경험이 필요한지 학생들과 치열하고 토론하고 납득시키는 노력이 부족했다. 학생들의 편협함만 탓할 게 아니라 교수들 스스로 사명감이 부족하지 않았는지 자문해 볼 일이다.

‘황 단장 교수 임용 소동’을 바라보는 국민들 심경은 착잡하다. 무엇보다 다양한 교육을 통해 역량 있는 미래 지도자를 길러내야 할 대학이 닫혀 있다는 사실이 실망스럽다. 서울대는 대학 사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도 황 단장의 교수 임용 절차를 재개하기 바란다. 우리의 미래를 위해 ‘황의 실험’은 계속돼야 하기 때문이다. 기술력과 경제력은 1류인데 대학은 언제까지 2류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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