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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 - 김형곤> 양적완화는 질적긴장만 불러올 뿐이다
양적완화로 실물경제가 살아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유럽 경기가 살아나고 있다는 소식은 아직 없다. 오히려 풀린 유동성이 아시아권으로 급속히 유입, 통화가치를 급상승시키는 등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직장인 A(45) 씨는 전화를 끊고 나서도 계속 씩씩댄다. 은행 대출상담원이 “대출 좀 하시라”는 전화였던 모양이다. 지금도 1억5000만원이 물려 있는데 무슨 대출이냐며 버럭 소리를 지르고는 집어던지듯 휴대폰을 꺼버린다. 그리고는 2년 거치가 끝나고 이달부터 원금과 함께 대출을 갚아야 하는데 여윳돈이 없어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전혀 화를 낼 필요가 없는 극히 사무적인 전화에 민감하게 반응한 것은 무리하게 대출받은 후유증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새해 벽두부터 글로벌 유동성 전쟁이 한창이다. 누가 더 돈을 많이 찍는지 경쟁할 정도다. 지난해 유럽에서 시작된 양적 완화가 미국을 거쳐 일본까지 가세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부채위기국 채권에 대한 ‘무제한’ 매입에 나섰고, 미국은 3차 양적완화(QE3)를 단행 중이다.

아베노믹스로 대변되는 일본은 아베 신조 총리가 “윤전기를 돌려서라도 엔화를 찍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엔화 약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일본은 중앙은행 존재의 최대 가치인 인플레이션 파이터를 사실상 포기했다. 우리 같으면 ‘남대문 출장소’라며 엄청난 비난에 직면할 텐데도 비교적 조용하다.

양적완화란 개별 은행이 보유한 국채 등을 중앙은행이 사들여 시중에 돈을 푸는 것을 말한다. 은행으로 들어온 풍부한 유동성을 실물경제로 흘려 경제를 살려보자는 취지다.

하지만 과연 현실이 그런지는 의문이다. 은행에 돈이 쌓여도, 시중 금리가 계속 떨어져도 대출은 늘지 않는다. 우선 민간에서 대출받을 여력이 없다. 가뜩이나 기존 채무를 갚는데 신음하는 판에 추가 대출은 꿈꾸기 힘들다. 특히 추가 대출에는 필히 그에 따른 반대급부가 있어야 한다. 바로 리스크를 감수할 만한 수익이다. 하지만 이젠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시장에서 수익을 내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대출할 리가 없다.

은행도 마찬가지다. 돈을 쥐고는 있지만 건전성 문제 때문에 대출 기준은 더욱 엄격하게 가져간다.

최근 유럽 은행권이 ECB로부터 빌린 장기 저리 대출을 상환에 나선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유로존 경제가 그 새 좋아져서가 아니다. 은행들이 이 자금을 대출금리보다 낮은 이율로 중앙은행에 예치했다가 손실을 본 데 따른 영향이 크다. 실물로 공급하라고 ECB가 빌려준 돈을 가장 안전한 중앙은행에 맡겼다가 손해 보는 웃기는 상황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대출의 양은 의지에 달려있는데 은행은 그런 의지가 없다. 책상에 앉힐 수는 있어도 공부에 집중하라고 강제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양적완화의 최종 목표인 실물경제가 살아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유럽 경기가 살아나고 있다는 소식은 아직 없다. 미국 역시 주택 등 일부 지표에 일희일비하는 정도다. 일본은 증시가 치솟고 자동차 수출이 살아나는 듯하지만 반짝 회복일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풀린 유동성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권으로 급속히 유입, 통화가치를 급상승시키는 등 엉뚱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건전한 재정이 뒷받침되지 않는 양적완화는 질적 긴장만을 불러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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