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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크엔드] “라면은 현대사회 축약…그 ‘찐한’ 국물에 중독”
도발적 詩 ‘라면의 정치학’ 으로 부조리한 현실 묘사한 신혜정
젊은 시인 신혜정의 도발적인 시 ‘라면의 정치학’이다. 2009년 펴낸 시인의 첫 시집 ‘라면의 정치학’은 반향이 컸다. 현실의 부조리를 거침없는 시어로 쏟아낸 그야말로 ‘쎈’ 시들은 나약해져가는 시의 자리를 다시금 북돋우며 깃발을 세운 듯했다.

‘라면의 정치학’을 논할 정도라면 ‘라면 박사’일 법도 한데, 신 씨는 라면을 먹지 않는다. 사실 푸성귀밖에 먹지 않는 채식주의자다. 채식주의자도 여러 단계다. 닭고기 정도는 양해되는 채식주의, 달걀과 우유까지는 먹어주는 채식주의도 있지만 그는 그야말로 순수 야채류과다. 그의 채식에는 이유가 있다. 그는 “문명에 대한 스스로의 성찰이기도 하다”고 했다.

“먹는 것이 그 사람을 대변해 주듯이 문명의 식습관 같은 게 그 사회를 대변해준다고 생각해요.”

그가 먹지도 않는 라면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순전히 호기심 때문이었다.


“제가 호기심이 많아서 상품을 살 때 꼼꼼하게 성분을 살펴보는 습성이 있어요. 그런데 라면봉지를 들여다보니까 알 수 없는 성분들이 많은 거예요. 한 30가지 정도 될 거예요. 개 중엔 돈골엑기스라는 것도 있더라고요. 사실인지 모르겠는데 제 시집이 나가고 난 뒤 돈골엑기스 성분이 없어졌대요.”

그는 라면이야말로 현대사회의 축약판이라고 말한다. 온갖 엑기스(진액)와 분말들로 만들어진 수프는 그의 시(詩)마따나 ‘물리학의 기적’. 사람들은 바삐 그 찐한 국물을 들이켜고 날로 중독돼가며 예민한 혀끝의 감각을 스스로 죽여간다.

이 시집의 충격은 시어의 생경함이다. 이질적인 말의 결합이 만들어내는 시어는 갑갑함을 털어낸 묘한 해방감을 준다. 또 하나 있다. 알아먹을 수 있게 쓴 시라는 점이다.

신 씨는 “사람들이 일상적인 사물에서 잘 느끼지 못하는 것을 들여다보고 은유화한다”고 말한다.

첫 시집을 낸 지 4년째, 그는 두 번째 시집을 준비 중이다. 그의 거침없는 시적 발언은 계속될까? “아무래도 시대에 대한 얘기를 하게 될 텐데요. 색깔은 달라질 것 같아요.” 소설 한 편도 쓰고 있다.

순간 그의 밥상이 궁금해진다. “저의 식탁은 소박한데요. 국하고 밥하고 김치하고 두부조림. 이 정도예요. 저는 일품요리를 좋아해서 한 가지만 조리해서 먹어요”

하루 두 끼, 시인의 미니멀한 밥상에서 시들이 꼬물꼬물 태어나고 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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