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 경제 위기 여전…얇아지는 유럽의 중산층
재정위기에 경제난까지…중산층 설 곳 잃자 최하층민으로
무료급식으로 연명…자살도 급증
美 중산층도 순자산 39%나 급감
2007년 말부터 빈번해진 세계 경제 위기의 최대 희생자는 중산층이다. 끝날 기미가 없는 경제 위기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도 바꿔버렸다. 수십 년 동안 부를 일궜던 남유럽의 중산층들은 재정위기로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스페인과 그리스 등 재정위기국에서는 중산층 상당수가 빈곤층으로 몰락했다.
이들은 고국을 떠나 유럽 부국의 최하층민으로 살아가거나 음식쓰레기를 뒤져 연명하는 빈곤층에 편입됐다. 삶을 자포자기하는 사람도 늘어 자살률도 급증했다. 중산층이 얇아진 나라에서는 어김없이 빈부 격차도 심해졌다. 중산층이 두꺼우면 사회가 안정된다는 것을 역으로 방증하는 셈이다.
▶망가지는 남유럽인의 삶, 몰락하는 중산층=금융위기가 잠잠해진 후 남유럽에서 다시 터진 재정위기는 중산층에 가장 큰 타격을 줬다.
스페인은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가입으로 불어닥친 부동산 광풍이 꺼지자 2000년 이후 두 배까지 치솟았던 주택값은 반토막 났다. 스페인 중산층이 은행에서 대출을 해 앞다퉈 매입했던 아파트들이 거품이 빠지면서 재정 위기의 원흉이 된 것이다. 극심한 경제난의 여파로 경제활동인구 4명 중 1명이 실직 상태다. 청년실업률은 50%가 넘는다.
일상은 더 처참하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스페인에서 음식쓰레기로 연명하는 일은 일상화됐다. 보건당국이 음식쓰레기를 먹다 병에 걸릴 것을 우려해 슈퍼마켓 쓰레기통에 자물쇠까지 채우는 실정이다. 또 스페인에 무료 급식으로 끼니를 때우는 이들이 넘쳐나고 있다고 전했다. NYT에 따르면 가톨릭 자선단체 ‘카리타스’는 2010년 무료 급식 의존자 수가 100만여명으로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었다고 밝혔다.
경제난은 죽음을 맞는 방식까지 변화시켰다.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IHT)은 최근 스페인에서 장례비를 아끼려 시신을 기증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고 보도했다.
국민 대부분이 자살을 허용하지 않는 그리스 정교회 신자인 그리스에서는 자살률마저 급증했다. 2007년만 해도 자살률 2%를 기록했던 그리스는 2011년 구제금융의 직격탄을 맞고는 자살률이 19%나 급증했다. 유럽에서 가장 낮은 자살률을 기록했던 그리스에서 자살이 유행처럼 번진 것이다. 중산층이 빈곤층으로 몰락하면서 인간의 존엄을 지킬 수 없는 지경에 몰린 것이다.
▶풍요의 상징 美 중산층마저도=중산층 위기는 강대국 미국도 피하지 못했다. ‘무너진 중산층’은 2012년 11월 미국 대선의 핵심 쟁점이었다. 대통령선거에 나선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는 나란히 중산층 공략을 최대 선거전략으로 내세웠다. 중산층이 몰락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미국 가계 재산의 감소는 재선에 성공한 오바마 대통령에게 큰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미국 중산층의 몰락을 불러온 것은 2008년 미국을 강타한 금융위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는 지난해 6월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공개한 소비자 금융보고서의 통계 결과로도 생생히 확인된다.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3년간 미국 중산층의 평균 재산이 38.8%나 줄어들었다.
보고서는 “2007년 금융위기가 시작돼 공식적으로 종료된 2010년까지 중산층의 순자산 가치는 12만6000달러에서 7만7000달러로 38.8%나 급감했다”고 분석했다. 특히 소득 기준으로 60~79.9%에 해당하는 계층의 자산가치가 40.4%나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중산층 보유 자산가치가 18년 전인 1992년으로 뒷걸음질쳤다는 것을 뜻한다. 결국 금융위기와 부동산 거품 붕괴 등 여파로 미국 중산층이 무너지고 있다는 얘기다. 미국 언론들은 풍요의 상징으로 그동안 경제를 지탱했던 중산층의 몰락이 미국 사회에 당혹감을 안겨줬다고 앞다퉈 보도했다. 이에 오바마 2기 정부는 중산층 복원에 정권의 사활을 걸겠다는 방침을 거듭 밝히고 있다.
권도경 기자/ko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