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군부 세력은 드레퓌스를 ‘악랄한 간첩’으로 몰아갔고, 한국의 6공화국 정권은 강기훈 씨를 ‘유서를 대필한 범죄자’로 몰아붙였다. 진실 공방의 쟁점이 된 소재도 드레퓌스의 필적과 강기훈의 필적이라는 점에서 유사하다. 그러나 두 사건에는 결정적 차이점이 있다. 드레퓌스 사건의 경우 진실이 밝혀졌고, 유서 대필 사건은 아직도 재심이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드레퓌스는 무죄 판결을 받은 뒤 다시 원래의 직업인 군인으로 돌아와 비교적 행복한 여생을 보낸 반면 강기훈 씨는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강기훈 씨는 유서 대필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뒤 3년의 옥살이를 마치고 만기 출소했다. 이후 컴퓨터 회사 등에서 일을 했으나 ‘동료의 유서를 대필해 줬다’는 딱지를 떼지 못하고 어렵게 살았다. 그리고 강 씨는 명예 회복을 위한 마지막 기회인 재심의 시작을 기다리던 중 간암에 걸리고 말았다. 지난해 12월 20일 유서 대필 사건에 대한 재심이 시작되면서 강 씨는 자신에게 덧씌워진 오명을 벗을 기회를 잡았다. 하지만 투병 중인 강 씨가 언제 명예회복을 할 수 있을지는 확실치 않다.
이런 상황에서 유서 대필 사건 전후의 역사적 기록과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책이 발간됐다. 홍성교도소에서 수감 생활을 하던 정봉주 전 의원(2012년 12월 25일 만기출소)이 옥중에서 집필한 <일어나라, 기훈아!>(미래를소유한사람들)가 바로 그 책이다.
저자인 정 전 의원은 강 씨와 함께 오랫동안 재야 민주화 운동을 함께 한 벗이다. 강 씨의 선배이기도 했던 정 전 의원은 강 씨가 만기출소하자 자신이 운영하던 학원으로 그를 불러 5년 동안 함께 일을 한 인연도 가지고 있다. 정 전 의원은 지난해 8월 감옥에서 강 씨의 투병 소식을 듣고 쾌유를 기원하는 편지를 써서 보냈다. 그 편지의 제목이 바로 이번에 출간된 책의 제목인 ‘일어나라, 기훈아!’였다.
이 책은 1991년 당시 상황을 집요하게 파헤치고 있다. ‘강기훈 유서 대필 사건’이 등장하게 된 배경부터 진행된 과정을 세심하게 추적함으로써 독자들에게 무엇이 진실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무엇보다 이 책은 강기훈 씨 한사람에게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있다. 저자는 책을 통해 강 씨뿐 아니라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 김기설, 1991년 5월 민주화 운동 당시 숨진 박승희, 천세용, 김영균, 김귀정, 강경대 등을 차례로 조명하며 그들의 넋을 위로했다.
한편 이 책의 인세 수익 전액은 간암 투병 중인 강기훈 씨를 돕는 데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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