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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YT 중문판 “소년 시진핑, 하방 시절 독서광”
[헤럴드생생뉴스]중국의 최고 지도자로 선출된 시진핑(習近平) 총서기는 10대 하방(下放) 시절 독서광이었다고 미국 뉴욕타임스 중문판이 16일 보도했다.

신문은 시진핑이 지난 1969년부터 7년간 하방 생활을 했던 산시(陝西)성 옌안(延安)시 옌촨(延川)현 량자허(梁家河)촌을 취재했다면서 이같이 전했다.

소년 시진핑과 함께한 집에서 3년을 살았던 농부 뤼넝중(呂能忠ㆍ80)은 “그는 독서를 무척 좋아했다”고 말했다.

뤼씨는 어떤 책을 읽었느냐는 질문에 “두꺼운 책이었는데 무슨 책인지는 모르겠다”면서 “그는 잠들기 전까지 책을 읽었다”고 회고했다.

시진핑 총서기는 지난 2003년 회고문에서 농민ㆍ노동자들과 호흡하면서 실사구시와 인민의 생활을 배웠던 젊은 시절 7년간이 매우 소중한 시기였다고 말했다.

량자허는 국공내전 당시 12년간 중국 공산당 혁명의 근거지였던 산시성 옌안시에서 113㎞ 떨어진 협곡에 자리 잡은 마을이다.

시진핑 총서기의 부친인 시중쉰(習仲勳)은 산시성 출신으로 혁명 근거지 건설을지원하며 존경받는 당 지도자가 됐으나 문화대혁명 당시 숙청됐다.

중국 공산혁명 영웅의 아들인 시진핑도 15살 때 베이징에서 상류생활을 즐기다가 10여명의 젊은이들과 함께 베이징에서 량자허로 하방됐다.

이 마을의 가구 수는 모두 100여가구로 시진핑 총서기가 살았던 때와 비교하면 배 정도 늘었다.

집들은 대부분 산비탈에 만든 동굴집이다. 나이 든 농부들은 옥수수와 호박, 감자를 경작하며,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떠났다.

뤼씨는 “그는 우리와는 완전 다른 사람”이라며 “생김새도 달랐고 말도 달랐으며우리는 베이징 악센트를 알아듣지 못했고 그는 우리 말을 못 알아들었다”고 말했다.

시진핑 총서기는 농사 체질이 아니었다. 그는 “이 곳 생활이 1년이 지났는데도그는 어깨 위에 얹은 물지게 물통 2개의 균형을 잡지 못해 힘들어했다”고 말했다.

뤼씨는 “그는 언덕을 걸어서 내려오지 않고 엉덩이로 미끄럼을 타며 내려왔다”면서 “아주 조심스럽고 주의 깊은 성격”이라고 말했다.

시진핑과 함께 하방을 온 다른 젊은이들은 군인 가족 출신이었으며 시진핑과는 친구가 되었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온 지 6개월 만에 군에 입대했다.

시진핑 총서기는 회고문에서 친구들이 떠난 뒤 “외로움을 느꼈다”고 회고하고 “그러나 시골 생활에 익숙해지고 마을 사람들에게 빠지면서 사는 것이 행복했다”고 말했다.

시진핑 총서기는 동굴집 몇 곳을 옮겨다니며 살았다. 그는 3년간 뤼씨 집에 살면서 뤼씨의 아들 뤼허우성(呂侯生)과 친하게 지냈다.

시진핑은 푸젠(福建)성 성장이 된 뒤 뤼허우성에게 다리 수술을 받으라며 돈을 보냈다. 뤼씨 집 벽에는 아들과 시진핑이 함께 찍은 사진이 걸려 있다.

뤼씨는 “그는 우리 가족 같았다”면서 “우리는 함께 살았고 일이 생기면 나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진핑과 마을 사람들 사이엔 벽도 있었다. 하방을 온 다른 젊은이들처럼 시진핑도 밀가루 배급을 받았다. 마을 사람들은 옥수수 껍질을 먹었지만, 시진핑은 동굴집에서 혼자 요리를 해먹었다.

마을 사람들은 가끔 시진핑 숙소를 찾았다. 시진핑은 “점점 많은 사람이 내 숙소를 찾았으며 내 숙소는 점차 마을회관처럼 변해갔다. 매일 밤 노인과 젊은이들이 찾아왔다. 우리는 거의 모든 것에 관해 얘기를 나눴다. 심지어 당지부 서기도 무슨 일이 생기면 나를 찾기 시작했다”고 회고했다.

탄후와(譚虎娃) 옌안대학 역사학 교수는 “시중쉰의 아들이 마을에 왔을 때 마을사람들은 그의 부친의 숙청에도 불구하고 그를 환대했다”면서 “이 곳에서 부친의 경력 때문에 시진핑은 환영을 받았다”고 말했다.

뤼씨는 “그는 말을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일단 말을 하면 다른 사람들이 말을 끊지 못했다”면서 “그는 강렬한 연설가이며 매우 확신에 차 있었다”고 말했다.

시진핑 총서기는 지난 1975년 베이징 칭화대에 입학하면서 량자허 마을을 떠났다. 뤼씨는 “그가 떠나던 날 일부 마을 사람들이 그를 손수레에 태워 부근 현정부까지 태워줬다”고 말했다.

시진핑은 몇십 년 후 저장(浙江)성 당서기 시절 량자허촌을 다시 찾았다. 그는 주민들에게 손목시계를 나눠줬다. 뤼씨는 “그는 마을 사람들이 너무 가난한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그가 량자허에 사흘을 머물려고 했으나 1시간 만에 떠났다”고 말했다.

량자허촌 당 간부들은 기자들이 시진핑 총서기가 옛날 살았던 집 근처를 얼씬거리지 못하도록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onlinenew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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