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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리 마굿간에서 탄생한 김창열의 물방울그림…대만을 사로잡다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토담빛 화폭에 방울방울 맺힌 물방울. ‘톡’하고 건드리면 곧 떨어질 듯한 영롱한 물방울이 대만인들을 사로잡았다.

‘물방울 그림’으로 명성이 높은 김창열(83.Kim Tschang Yeul) 화백이 대만의 중부도시 타이중의 국립대만(臺灣)미술관에서 지난 3일 오후 개인전 개막식을 가졌다. 파리와 서울을 오가며 활동하는 김 화백은 이미 파리 국립주드폼미술관과 베이징 국립국가박물관 등에서 개인전을 가진데 이어 이번에 대만에서의 대규모 작품전에 40여년의 예술궤적을 풀어놓았다.

1988년 개관한 국립대만미술관은 연간 110만명이 찾는 대만 유일의 국립미술관으로, ‘아시아 아트비엔날레’ 등 아시아 예술교류에 앞장서온 곳이다. 한국 작가가 이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여는 것은 김 화백이 처음이다. 대만 문화부 초청으로 열린 전시에는 1964년 초기작에서부터 최근작까지 각 시기를 대표하는 대작 47점이 내걸려 물방울 그림의 변천과정을 한눈에 살필 수 있다. 또 투명한 물방울을 유리로 빚은 설치작품 2점도 나왔다. 


개막식에서 황차일랑 대만미술관장은 “지극히 동양적인 세계를 서양의 조형성과 접목시킨 그의 작품은 정말 특별하다. 그 어떤 작가의 작품 보다 확연히 다르다. 초기에 김창열은 극사실주의를 전제로 차가운 느낌의 물방울을 선보였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며 물의 흔적과 번짐효과가 가미됐고, 천자문과 컬러가 곁들여지며 생명력과 호흡이 생겼다”고 평했다.

린히샤오유 대만미술관 큐레이터는 “화폭 가득히 매달린 물방울을 대만인들이 너무 좋아하고 있다. ‘어쩌면 이렇게 진짜 물방울 같으냐’며 만져보려고들 한다. 김창열 작품에 대해 교육을 받던 도슨트(전시해설사)들도 죄다 탄성을 지르더라”고 전했다. 또 대만을 대표하는 아트컬렉터인 린밍저 산(山)예술문화기금회 회장도 “20여년 전부터 김 화백 그림을 봐왔는데 늘 매혹되곤 한다. 비어있으면서도 꽉 차있는 그 세계에 탄복하게 된다”고 했다. 


그러나 정작 김 화백은 “변변찮은 그림을 갖고 이 좋은 미술관에서 전시를 갖게 됐다. 달마대사는 9년간 벽만 들여다보고도 득도했는데 나는 40여년간 물방울을 그렸지만 득도는 커녕 아직 근처에도 못 갔다”고 답했다. 이어 “주위에서 다른 소재도 많은데 어째서 죽자하고 물방울만 그리느냐고 많이들 묻는다. 40년 넘게 물방울을 그렸으니 사실 물방울의 노예가 된 셈이다. 헌데, 마누라가 예뻐서만 같이 사는 건 아니지 않는가? 여러 가지 인자(因子)가 있기 때문에 함께하는 것이다.”고 덧붙였다.

평안도 맹산 출신의 김 화백은 서울대 미대를 거쳐 1964년 뉴욕에 이어 1969년 파리에 정착했다. 1961년 제2회 파리비엔날레, 1965년 제8회 상파울로비엔날레에 출품하면서 ‘더 이상 우물 안에 머물러선 안된다. 국제적인 언어를 획득해야 한다’며 세계로 눈을 돌린 끝에, 맨주먹으로 파리에 둥지를 튼 것.

미(美) 록펠러재단 초청으로 1965년 미국의 주요 미술관과 미술대학을 두루 둘러본 것이 국제무대에 도전하게 한 결정적인 동인이었다. 이듬해부터 미국 뉴욕에 체류한 그는 넥타이에 그림을 그려넣는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작업에 몰두했고, 마침내 꿈에 그리던 파리에 정착하기에 이른다.


그가 물방울 그림을 처음 그린 곳은 파리 근교의 마굿간이었다. 당시 경제적으로 몹씨 궁핍했던 김 화백은 파리 남쪽 팔레조의 마굿간에서 먹고 자며 그림을 그렸다. 화실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척박한 환경이었지만 그는 개의치않고 새로운 회화실험을 거듭했다. 새 캔버스를 살 돈이 모자라 캔버스를 재활용해가며 그림을 그리던 어느날, 김 화백은 놀라운 발견을 했다.

캔버스에 달라붙은 물감이 쉽게 떨어지도록 뿌려놓았던 물이, 이튿날 아침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빛났던 것. ‘물방울들이 너무나 장엄했다’는 그는 이후 점액질 같은 물방울에서부터 곧 흘러내릴 듯한 맑은 물방울, 화폭을 뒤덮는 올오버식 물방울, 천자문 위에 얹혀진 물방울 등을 잇달아 탄생시켰다.

잠시 후면 곧 소멸될 물방울이지만 한순간 더없이 찬란한 아름다움을 뿜어내는 김창열의 물방울들은 지극히 극사실적이지만 초현실적이기도 하다. 모든 것을 그저 공(空)의 세계에 담은 듯한 그림에서는 존재의 근원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작가의 소망이 읽혀진다. 


1970년 사각의 캔버스틀 사이를 비집고 나오는 점액질 물방울이 등장한 이래 김창열은 1971년 노란 캔버스에 하얀 물방울 하나가 오롯이 맺힌 물방울 그림 ‘현상’을 선보였다. 그리고 이듬해에 최초의 투명한 물방울 그림이 탄생했다. 그리곤 1973년 파리 Knoll 화랑에서 물방울 그림들을 모아 개인전을 열었다. 동양에서 온 무명의 화가가 선보인 물방울 그림은 파리 화단에 엄청난 파란을 일으켰다. “김창열의 물방울들은 보기 드문 최면의 힘을 지니고 있다”, “정지된 시간과 불변하는 세계의 이미지, 노자의 사상이 담겨 있는 이미지들이 주조를 이룬다”는 비평이 줄을 이었다.


1976년에는 고국에서도 물방울 그림을 선보였다. 한국을 떠난지 10여년 만에 갖는 귀국전이었다. 일본 도쿄화랑에 이어 서울서 연 작품전은 그림들이 전시 오프닝 전에 모두 팔리며, 김창열을 예술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겸비한 ‘물방울 화가’로 각인시켰다.

그는 “물방울이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다면 유년시절 강가에서 뛰놀던 티없는 마음에서 왔다고 하고 싶다. 또 청년시절 6.25전쟁의 끔찍한 체험도 물방울에 담겨 있을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 나니 중학동기 120명 중에서 60명이 죽었다. 그 상흔이 물방울 그림의 출발이 된 셈”이라고 했다.

결국 김창열의 물방울은 ‘20세기 한국사를 관통하는 고통과 상처의 원형이 진화해온 형태’(미술평론가 김복기 평)라 할 수 있다. 대중들에게 물방울 그림이 특히 친근하게 읽히는 이유도 우리의 지나간 삶이, 그 잊을 수 없는 기억들이 알알이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사 희노애락이 작은 물방울 하나에 모두 투영돼 있기에 우리는 그 영롱한 물방울에 매료되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흰 수염을 길러 마치 도인처럼 보이는 김 화백은 스스로의 생명철학을 절제된 색채와 주제로 표현함으로써 이제 선(禪)의 경지에 다다르고 있다. 김 화백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고 애쓰는 작업이 곧 그림이다. 물방울을 그리지만 늘 물방울 이상의 것을 그리려 한다.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거나, 조형예술가들이 탐구하는 세계나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며 “내 그림을 보는 이들이 마음껏 상상하고, 문학적으로 많은 걸 연상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조각가 심문섭은 “김창열의 물방울 그림은 구상적이고 추상적이며, 사실적이면서도 개념적이다. 공간의 비움과 채움, 생성과 소멸 등이 무한대로 변주되는 그림이다. 따라서 그는 단순한 ‘물방울 화가’가 아니다. 그의 작품에는 공간론, 존재론, 그리고 절제의 미학이 모두 담겨 있다”고 말했다. 


한편 3일 열린 국립대만미술관 전시 개막식에는 마잉주 대만 총통이 축전을 보냈으며, 대만및 프랑스의 문화예술계 주요 인사, 미술평론가, 표미선 한국화랑협회장(표갤러리 대표)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또 김 화백의 그림과 그의 인품을 흠모하는 친구및 친지 10여명도 서울에서 날아가 따뜻한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전시는 내년 1월 20일까지 계속된다.

타이중(대만) 글=이영란 기자/yrlee@heraldcorp.com, 사진=김오안. 작품사진 제공= 표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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